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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혜 May 01. 2024

샤넬백 대신 포르투갈 한 달 살기 (3)

포르투 어느 한적한 동네에서

1층 공용 주방에 들러, 장 봐온 것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전문적인 요리? 간단한 요리! 를 하기로 했다.


유럽식 샐러드를 만들어 본다. 쿠팡은 채소믹스 300g에 7천 원인데 포르투에서는 반 값 이상 저렴하다. 마트 물가는 확실히 안정적이고 살맛 나게 한다.


흔한 가정집 냉장고를 기대하면 큰 오산이 기다리는 포르투 한 달 살기. 모든 것이 불편해야 마땅한 서유럽 끝에서 감내해야 할 것들이 있다.


한 달 살기 첫날부터 한국이 생각났다면?


나는 건물 최고층인 6.5층 옥탑방에 살았기 때문에 이 작은 냉장고를 함께 사용해야 했다. 그 인원은 최소 5명은 된다. 또 대부분 장기 투숙객이라 살림거리가 꽤 있다. 포르투갈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모를 현지 학생부터 나 같은 관광객과 어느 외로운 외톨이 한 명이 공유하는 주방 겸 거실이다. 다행히 주방 구역은 야외까지 포함해 20평 남짓된다. 하지만 무성한 잡초와 풀이 있는 야외테라스보다는 아늑한 옥탑에서 홀로 끼니를 해결하는 편이 낫다. 내 안에 아직 열리지 않은 무언가가 있기에 평소답지 않게 굴었다.


“헬로 Hello."

주방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했다. 그러면 10이면 10 모두 같은 단어로 응답했다.

그런데 그중에 단 한 명의 누군가가 긴 문장을 말한다.    


“How are you?"

예기치 못했기에 나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애써 웃으며 답한다.


“I'm good! Thank you."

만약 내가 그 외톨이와 같은 문장을 구사했다면, 족히 30분 이상 주방에 갇혀 대화를 이어나갔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면, 당연히 반겼을 대화 구멍. 시시콜콜하게 인생 이야기를 터놓고 그의 인생도 들여다봤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세상에 등 돌리기 직전 혹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고 마음 한구석이 흔들렸기 때문에 언젠가 둘의 대화는 물꼬를 틀 것이란 생각은 들었다.


라즈베리를 씻어 새하얀 종지에 담고 샐러드볼에 푸릇푸릇한 채소를 담아 삐그덕 대는 수백 년 된 나무계단을 오른다. 그 나무는 최소한 나보다 많은 사람을 보고 듣고 느꼈을 것이다. 걸음걸이에서 신발에서 발끝에서 그들의 에너지를 느꼈을 것이다. 모든 세월을 안고 있는 계단은 보란 듯이 너도 왔구나 하고 소리를 낸다. 그런 소리가 안정적이다. 마음을 안정케 한다. 사람보다 자연이 일궈 내는 것들에 대하여 한창 관심을 가졌다.


마지막 계단인 문턱을 가장한 열 계단을 오르면서 처음과는 달리 기분이 좋아진다. 나무 냄새가 좋다. 옥탑방에서 같이 사는 갈매기들의 몸짓은 더 좋다. 가끔 그 새는 아기 새에게 먹이도 주며 엄마의 역할을 다한다. 그런 풍경을 안고 있으면 절로 가족 생각이 난다. 어쩌면 우리집에서 내가 가장 큰 문제아일지도 모르는데 (아마 부모님은 이미 포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를 누리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 만약 가족 중 누가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한 이가 있다면 아무리 힘든 시기도 헤쳐나가지 못할 것이다. 감사함을 느끼며 살기로 했다.


나에게 포르투 한 달 살기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친구를 사귀는 것은 학창 시절 때면 충분하다. 진정한 나를 살피기 위해 먼 곳에 긴 시간 큰 값을 내고 주사위를 던져보기로 했다. 첫 한 달 살기가 과연 나의 여행 스타일과는 잘 맞을지도 지켜봐야 할 일이다.


잔잔한 바다에 뛰어들어 마구 헤엄친다고 했다. 발버둥인지 소용돌이를 일으키는지 모를 때 던져본 것이다. 그리고 혼자가 혼자에게 필요한 시간을 가지며 철저하게 혼자로 살아본다. 포르투에서 나를 알아보는 이는 없으니 말이다. 혹은 어떤 평가를 받든 상관이 없다. 그것은 서로의 자유다. 각각의 자유를 위해 존중받고 존중하는 것이다.



<다음날>, 알람 대신 흔들리는 지붕에 잠이 깼다!


나무판자로 지어졌을지도 모르는 옥탑방에 살고 있다. 1톤 트럭 같은 대형차가 지나갈 때면 더욱 흔들린다. 아득해졌다. 새벽부터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 덕분에 새벽바람에 뒤척여야 했고 침대가 놀이동산 바이킹 같았다.


예기치 않은 이른 산책을 나서기 위해 어제 남은 샐러드를 한 줌 집어 먹고 소문난 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자우림 노래를 싫어하는 이가 있을까.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하는 ‘콤비 combi’ 카페. 그녀는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포르투를 담아냈다. 단순히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도착했고 입장하자마자 따가운 시선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동양 여자애가 혼자 돌아다니면 안 되는 것일까. 매서운 시선에 당혹스러웠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고 자리를 잡고 첫 커피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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