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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혜 Apr 24. 2024

샤넬백 대신 포르투갈 한 달 살기 (2)

첫발 내딛기

‘더럽게 비싼’ 옥탑방에서 시작된 나의 포르투 한 달 살기.


딱 그 표현이 맞다. 부활절이라 모든 가격이 올랐고 화장실 쉐어하는 곳도 룸 타입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그래서 시내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로컬동네에 머무르기로 했다. 포르투는 도보 여행이 가능한 소도시라 중심가에서 떨어져 있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주 단위부터 월 단위까지 숙박 기간이 늘어날수록 할인율은 높아지는데 대략적인 숙소 위치를 구글지도로 먼저 살펴본 뒤 예약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숙소와 인접한 마트를 검색해 동네 분위기와 술집, 클럽 등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나에게 적당한 숙소를 골랐고 정확히 내 생일 하루가 지난날 도착했다.


‘24 de Agosto' 역에서 도보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무려 30분이나 걸렸다. 처음에는 10도 그다음에는 20도 가장 높은 곳까지는 30도 정도로 경사진 언덕길을 캐리어를 끌고 가다 멈춰서기를 반복한다. 산만하다. 빈티지한 그린, 개나리색 대문, 주인 없는 디스플레이, 작은 구멍가게에 얼굴을 쏙 넣고 구경하다 내부 레스토랑에 있던 손님과 눈이 마주치고 깜짝 놀란다. 황급히 제 갈길을 가기 시작했다.

 

대서양을 닮은 아줄레주 장식을 한 바다 같은 건물 앞에 우뚝 섰다. 낡은 듯 세련되고 새하얗고 또 때가 탄 문을 힘껏 잡아당겼다. 옛것을 고수하는 유럽스타일에서 조금 비껴간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아주 예쁘다. ‘한 달 살기 하우스’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과거로 정확히는 중세시대로 돌아간 듯했다. 나의 첫마디는 감탄사로 터져 나왔으며 복도에 서서 한참 구경하다 이웃 주민이 될 사람을 마주하고서야 진짜 목적지로 향했다.


족히 2m가 넘는 계단을 열 번을 올라야 한다. 스무고개가 낫겠다. 쌀 한포대가 넘는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예상치 못한 난관에 잠시 망설이다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누군가 나의 인기척을 듣고 버선발로 쫓아 나와 짐을 들어주지 않을까? 그것마저 아니라면 며칠간 만세는 꿈도 못 꿀 것이다.


가장 높은 곳에 도착하니 무의식 중에 한숨이 터진다. 고통과 안도가 섞인 숨이었다. 연락 않던 친구와 조우하듯 문을 열었는데 그 친구는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은 것 같은 감정이랄까. 방문을 열었는데, 또 다른 나무로 된 계단이 있었다. 삐그덕 대는 나무 계단에서 충분히 위태하다 추락의 맛까지 아주 짜릿했다. 힘이 다 빠져버린 늘어나다 못해 끊어져 버린 고무줄마냥 너덜너덜해졌다.


한 달 살기 숙소가 우리집보다 작은 것은 사실이다. 집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말에 백 번이고 동의한다. 4월 동안 편히 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일 수백 개의 계단과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매주 빨랫감을 들고 세탁방에도 가야 한다. 고생길이 훤한 내가 그려졌다. 웃음이 나지 않았다. 비싼 돈을 들여 고작 한다는 것이 단순한 노동일지도 모른다. 노동의 종류가 어떻다 한들 불평할 여건이 안 되기에 그에 맞추지 않으면 더 이상 나는 나를 넘지 못할 것이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대형마트에 들렀다. ‘리들Lidl'은 정말 오랜만이다. 한때 배고팠던 시절에 밀가루 식빵 뭉치를 단돈 1유로에 살 수 있었다. 10년이 지난 시점, 리들의 가장 저렴한 물품이라면 물과 맥주 그리고 역시 식빵이었다.

마트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을 만큼 아시아인이 드문 동네에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구매했다. 시장 가방처럼 풀이 죽은 배낭에 라즈베리와 치즈, 햄, 맥주, 빵 등을 모조리 넣었다. 그리고 번들로 묶인 생수를 이고 또다시 언덕길을 올랐다.


고행, 어쩌면 배부른 소리. 근육통이 올 것 같은 일들의 연속이 축복받은 것이라 생각하면 좋겠다. 분명 배곯던 시절이 훗날 꽃이 만개하던 기나긴 봄이었다는 것을 깨달아놓고 기억상실증을 앓는 사람처럼 입이 삐죽 나왔다. 그 길을 오르며 다시 다짐했다. 이 길을 한 번 가보자고. 병든 나를 이끄는 것은 새롭게 다져진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을 바꾸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나는 영원히 과거의 나로 남을 수 없는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조금은 가까운 미래를 바꿔놓을지도 모르니까. 앞이 까마득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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