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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혜 Apr 17. 2024

샤넬백 대신 포르투갈 한 달 살기

서른 중반 무렵에 나 홀로.

시간이란 지도를 따라 지난 나를 돌이켜보기로 했다.


‘직장, 결혼, 독립’은 여전히 어려운 단어다.


숨이 막히고 시간이 멈춘 듯하고 짙은 안개가 자욱한 세계에 버려진 썩은 나뭇자루와 같다. 순수가 침해되고 물질에 의한 동요에 의해 뿌리가 조금씩 흔들리다 꺾이고 만다. 간신히 하나 남은 실오라기의 줄기를 담아서 한참을 깊은 동굴에서 나오지 않았다.


“여보, 나 한 달 살기하고 싶어.”

“한 달 살기? 어디로 가려고?”


남편은 퇴사 후 외벌이로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어렵게 해외생활을 한 경험들이 있어 누구보다 이해는 빠르지만, 큰돈 들여 <해외 한 달 살기>를 한다는 사람을 누가 반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뻔뻔하고도 지독한 욕심으로 그의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했다.

내 집 마련 후, 어쩌면 더 궁핍해진 삶에 기어코 뿌리를 뽑으려는 사람이 있었다. 때마침 남편은 해외 출장으로 바쁠 때였고 나는 그때를 노려 [포르투 한 달 살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무것도 아닐 때 할 수 있는 일은 ‘네이버 블로그’라고 생각했고 그 작은 세상에서 첫 연재를 시작했다.


‘포르투... 왜 이리 비싸?’

‘부활절은 또 뭐야?’

’옥탑방에 화장실은 있어야지 안 그래?‘


‘가성비 가성비 가성비!!!’ 그놈의 가성비 때문에 며칠 밤을 새가며 포르투 숙소를 정했고 무려 한 달에 1천 유로이란 돈을 지불하기에 이르렀다. 도무지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넘을 수 없는 금액이었지만 먼 훗날 단비를 내려 가뭄이던 땅에 사막의 꽃이라도 피우지 않을까 싶었다. 그 꽃은 얼어붙은 땅을 서서히 물들이고 밝힐 것이며 엉성하게 뻗친 길들을 조금은 다듬어줄 것임을 안다.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몰라 한심한 인간이 된 것 같아 단전부터 올라오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그렇게 ‘포르투갈 한 달 살기’는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시작되었다.


바위 같은 캐리어를 끌고 여행길에 오르면서 줄곧 생각했다. 아무 계획 없는 한 달 살기가 도움이 될는지. 단순히 먹고 자는 일에 큰돈을 써도 될지. 그리고 하루에 한 번은 외식해도 괜찮을지 등을 머릿속에 나열해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잡생각 뭉태기가 가득했다. 핵심은 빼놓고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돈 버는 일’에 국한해 살았다.

약 5년간 고객들을 모시면서 못난 자아를 키우고 물질적인 삶에 목숨 바쳤던 나에 대한 반성은 쏙 빼놓은 채 말이다. 매년 생일마다 수백만 원씩 하는 명품백을 지르며 가방으로 순번을 매겼다. 언제부턴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고 친구를 사귀다 보니 기댈 곳도 사라졌다.


<2023년 3월 생일날>, 샤넬백 대신 ‘한 달 살기’를 구매했다.

나는 샤넬백이 가진 물질적 가치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 가치를 등지고 살아가기로 했다. 왜냐하면 부자가 아니니깐. 바닥난 통장을 대신해 경험함으로써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단순히 ‘여행 블로거’로서 남들 다 하는 테마를 가지고 포스팅하고 싶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홀로 해외에서 한 달을 보내다는 것은 실로 큰 의미일까.


저벅저벅 지하철을 타고 김해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환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승무원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가슴은 두근대기 시작했다.

‘어떤 연유에서 혼자 비행기를 탔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녀가 내가 되고 보니 마땅하든 아니든 이유가 어찌 됐든 여행은 그냥 여행일 뿐이다. 창밖으로 내려다보는 대한민국이 아름다워 보였고, 비행기는 암스테르담을 거쳐 바르셀로나에서 포르투까지 안내했다.


’왜 이제야 이곳을 왔을까!‘

’혼자 오니 말수가 줄어 불편하군.‘

 

혼자서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이동했다. 지하철을 타자마자 바깥풍경에 넋을 잃었고 꽃피는 봄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인지했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서 적어준 ‘꽃 피는 봄에 태어난 걸 축하한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눈가가 뜨거워질까 봐 가까운 지하철 내부로 시선을 옮겼다.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불과 두 정거장을 지나자마자 현지인들을 영접할 수 있었다. 큰 짐을 이고 있는 내가 피해가 될까 봐 눈치가 보였지만 그들은 전혀 나를 의식하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포르투’가 실감이 안 났다. 공항에서 탔더니 주변에 아무도 없었고 옆자리는 계속 비어있었다. 코로나가 종식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 두기가 일상화된 시점이다. 우리나라 지하철과는 사뭇 다른 풍경에 휘둥그레하다 종착지에 내리지 못할 뻔하고 시간은 30분이 지나 있었다. 무의식의 세계를 탐험하다 작은 동네 입구에 도달하게 된 서른넷의 나. 콘크리트빛 역사는 낯설고 냉기가 가득하다 못해 부르르 떨게 했고 나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햇빛을 찾으러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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