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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혜 Apr 06. 2024

런던에서 보낸 1년 (마지막화)

영국 워킹홀리데이

‘샘(Saem)’과 나는 프랑스 북부 소도시 <디나드 Dinard>로 떠났다.


런던에서 출발하는 가장 저렴한 티켓이었다.


디나드 공항에서 생말로를 거쳐 몽생미셸을 둘러보고 오는 코스다. 마음이 힘들고 물질적으로 궁핍할 때 망설임 없이 나를 도와준 은인이자 친구와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한 살 차이라도 성숙함이 묻어나는 그녀에게 의지하며 줄곧 ‘런던가족’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녀는 쌀 한 톨도 나눠주는 심성을 가졌다. 분명 배고픈 시간이 있었을 텐데.

나와 그녀는 피날레를 함께 장식하고자 프랑스 북부 여행을 떠났고, 고생했다. 생말로가 가진 눈부시고 아련한 감성에 푹 빠져 몸서리치다 몽생미셸 야경에 넉다운이 돼버린 그때의 우리. 그녀라서 다행이었다.


우리의 버킷리스트였던 ‘아이슬란드 워크캠프’를 가고 싶었지만, 금전적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나보다 오래 런던에 머무르면서 워크캠프 참가비가 부족해 부모님께 손을 벌렸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입생로랑 립틴트를 생일선물로 선사한 그녀. 아픈 나를 위해 한식당에서 공수한 고춧가루가 팍팍 들어간 무채까지. 나는 그녀에게 빚진 것이 참으로 많으며, 여전히 그 빛에 마음이 쓰인다. 그녀는 우리집 만년 초대손님이고 물주다. 내가 여행을 떠날 때 ‘부산집’을 빌려줄 만큼 강력한 믿음의 존재이다.


1년 간, 런던 워킹홀리데이에서 ‘사람’을 얻었다.


돈에 미쳐 날뛰는 시간에 갇힌 나를 되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왜 ‘돈돈돈’ 거렸는지 진짜 돈이 없어서인지 돈에 욕심이 생긴 것인지. 가끔 은인들에게서 비친 빛 때문에 정신을 차리곤 했다. 돈밖에 없었더라면 돈이 되는 일만 했을터.


숨통을 조이다 조금은 느슨하게 만들 줄 아는 완급조절을 배우면서 꽉 묶인 실밥을 다시 뜯고 여유롭게 시침질하는 재수선자의 내면을 읽을 때까지.


부모님께 받은 사랑과 힘이 얼마나 큰지, 따뜻한 밥 한 공기에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 남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넬 줄 아는 사람. 진심을 다해 열성을 다해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할 줄 아는 사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 어려운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함께 책임질 줄 아는 사람.


만년 막내로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나를 내려놓을 사건의 연속이 지속되면서 넘치는 급류에서 수영하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위험한 일인지 뼛속깊이 새겼다.


그 어떤 일이 와도 내 뿌리를 흔들어놓을 수 없도록 기둥을 세우고 땅을 가꿨다.


‘배움’의 시간이라고 본다.



그런데 나는 시간이 흐르자 망각하기 시작했다. 배고픈 시간을 미화하기 시작했으며 마치 업적이라도 되는냥 떠들어댔다. 귀국하고 바로 취업을 했다. 부산에서 꽤 높은 연봉을 받고 일하는 직업은 몇 없다. 특히 내 전공인 사학을 살려 평생 밥벌이를 하려면 학예사 자격증을 따거나 대학원을 가야 했다.


주어진 시간 내 취업이란 문턱을 넘기 위해 [대기업 영업직무]에 지원했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기업에 처음 낙방하고 재도전해 입사하게 된다.


’런던에서 1년이나 있던 사람이야~‘ 하고 동기들 앞에서 거들먹댔다.


“추가적으로 할 말이 있나요?”

“네, 저는 런던 스타벅스에서 일할 때 매출이 적은 날에는 야외에서 직접 영업활동을 하면서 매출 상승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줬습니다.”


면접에서도 매출 올리는 비법을 소개하며 당당히 입사했다. 면접관에게 매력적인 영업직무 지원자였다. 여성 면접관은 옆에 있던 남성 면접관에게 낙방한 이유를 따져 물었고, 그는 인적성검사에서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만약에 이 글이 출판된다는 가정하에 쓴다면,

[영국 워킹홀리데이 이후 대기업에 수석 입사하다.] 라는 제목을 썼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한 번의 낙방 이후 수석으로 입사했고, 회사 대표가 나를 만나기 위해 부산까지 출두했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순간들이다.  


목적 없이 달리던 <4년 8개월>이란 시간 동안 메마른 사막의 나뭇잎처럼 그저 오아시스를 기다리는 사람일 뿐이었다. 못난 나로 살며 병이 생겼다. 대한민국은 영국이 아니었고, 개인이 전부를 한다 해도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초회사에서 대기업에서 살아남는 일은 면역체계가 무너질 만큼 스트레스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지금 나는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해 여행하고 있다. ’겸손‘이 필요한 이유를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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