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경혜 May 08. 2024

샤넬백 대신 포르투갈 한 달 살기 (4)

내가 어때서는 나를 몰라서에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동양여자애는 구석에 자리 잡았다.


연신 흥얼거린다. 의미 없는 시간이 흘러간다. 타인의 시선을 간신히 거두고서야 고뇌에 빠진다. 혼자라 외로움은 피할 수 없다고 느낀다. 또 문득 고독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감성을 묻어두었다 끄집어낸다. 사유라면 사유고 사치라면 사치겠지. 내면을 알려고 할수록 소름 돋게 철저히 낯선 사람이 자리하고 있다.


무엇을 피해 도망쳐왔는지. 누구를 위해 걷고 있는지. 껍데기에 불과한 나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소름 끼친다. 플랜비가 있었더라면 완벽하게 나를 재단할 수 있었을까? 나는 왜. 과정 없는 목표만 보고 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을까. 나는 원래부터 그런 류의 인간인가. 모진 말을 뱉어야 하는 자리에서 강약조절을 하지 못한 자신이 미울 뿐이다.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퍼즐은 제각각이었다.


포용력? 배려심? 인간미? 생존을 위한 걸음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감성보다 이성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상대에게 아픔을 안겼고 1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야 공감할 수 있었다. 밑바닥부터 길을 닦아 올라간 자리가 히틀러만큼이나 독재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감내해야 했으며 불만이 쌓여버린 것이다.

처음으로 내 의견과 생각이 틀릴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나를 돌아봐야 했다. 1등만 고집하는 인간의 최후는 빈껍데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쌓은 명성과 명예는 한방에 무너졌고, 외로운 섬에 갇혀 허둥지둥 대는 존재도 그 이하도 아닌..


사람과 일 중에서 후자만 보고 달렸단 생각에 쥐구멍 같은 깊은 산속에 숨고 싶었다. 남이 나를 경멸하고 헐뜯으며 거리를 둔다는 것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동시에 무너뜨린다.


‘네가 일을 잘하는 줄 알지?’


이 말을 새겨들었어야 했다. 직장 상사가 조언을 해줄 때는 귀담아 들어야 했다. 결과를 얻고 금전적인 보상이 따랐다. 제3자가 볼 때는 대단한 일이지라도 막말은 상대에게 비수가 되어 꽂혀버렸다. 그때는 어리석게도 스스로를 칭찬했다. 남들보다 잘 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투명한 유리컵을 꼭 잡고 있는 사람이 있다. 유일한 동양인은 늘 그 카페에 갈 때면 동물원 원숭이가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원숭이를 자처하며 지내기로 한다.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 머무를지라도 대화 한마디 섞지 않았으므로 철저히 남이라는 사실에 의거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들이 기대하는 상냥한 동양여자애는 없다.  나는 ‘슬픈 나‘, ’회복되지 않은 나’, ’외로운 나’로 남아있으려고 노력했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서 유일하게 말을 거는 것은 꾀꼬리 새소리와 흩날리는 나뭇잎, 코끝을 스치는 봄바람이었다.


그 바람을 타고 무작정 걷다 막다른 골목길을 마주했다. ‘1번 트램’ 루트를 따라 시내 반대편으로 걸었다. 그렇게 꼬박 30분을 걸어야지 ‘수정궁 정원’이 나왔다. 입구가 나올 때까지도 수직낙하할듯한 언덕을 올라야 했다.


드디어 평지에 도달했다. 발바닥이 온전하게 바닥에 붙는다. 천천히 걷는 법을 사랑한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는 말이 와닿는 순간이다. 자연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숲 속 정원을 거닌다.


애완동물의 자태로 콘크리트 바닥을 거니는 공작새들부터 그 틈에 비치는 순수함이 보인다. 근심이 없는 듯한 사람들 사이 온 세상의 걱정을 끌어안은 나를 받아들인다.


이 정원은 천국임에 틀림없다. 평온하지만 낯설다.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다.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공작새가 하프를 연주하는 것 같다. 그들은 멜로디를 만든다. 하지만 나는 시끄러운 음악을 듣는다. 극단적으로는 축복과 저주 혹은 어둠과 밝음, 어른과 아이로 예를 들 수 있다.


걷는 것은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행동으로써 온 정원을 누비고 다니며 전망대에도 올랐지만 도우루강과 아라비다 다리 그리고 크루즈를 봐도 온통 무채색이었다. 나는 수년간 스스로 밥을 먹지 않았던 것일까. 그릇된 정의에 의해서 감정을 잃어버리고 결국에는 자아마저 사라져 버렸다. 외모로 속단했고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휘둘렸다.


화창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나와 잘 지낼 수 있을까?‘ 하고.

이전 16화 샤넬백 대신 포르투갈 한 달 살기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