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면
온전히 포르투갈 한 달 살기는 내 것이 된다. 차근차근 나를 살폈다. 아침부터 저녁 끼니는 무엇이고 산책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 모두 나의 단순한 욕구에서 나왔다.
‘오늘은 뭐 하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나에게 직접 밥을 떠먹여 준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주 정성스레. 하루가 쌓이고 이틀이 되고 나흘이 되면서 서서히 나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웃고 싶어서 웃어보고 걷고 싶어서 걸었다. 다만 말수는 줄었지만 내가 나에게 모모처럼 행동할 수 있어 좋았다.
‘좋다는 것’은 지극히 내 기준에서 시작되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첫걸음이다.
파스텔 핑크에 깃든 회색빛 어둠이 멋스러운 포르투의 작은 언덕에 앉아 있는 신사가 보인다. 그는 도로를 등지고 벽을 보고 앉아 있다. 그의 생각을 상상해 보고 지긋한 눈빛으로 위로해 본다. 포르투에서 홀로 지내면서 외롭지 않다고 느꼈던 점이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혼자인 사람이 많았다. 외로움에 정도가 있다면 같은 건물에 지내는 아저씨는 10에 도달했을 것이다. 당연히 10이 최고치다. 불현듯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게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 기분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진 것이 절대적인 무언가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가졌다.
첫 주는 무한정 관광을 했다. 천천히 걸으니 모든 순간이 액자 같았다. 수십 마리 비둘기에 둘러싸여 빵가루를 나눠주는 자줏빛깔 헤어를 지닌 아주머니가 있다. 그리고 한정된 순간에 동화될 수 없다고 굳게 믿은 나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도우루강을 끼고 걷는다. 버스킹 선율은 수면제가 되어 날아들고 입김을 불어넣는 날씨는 포근한 낮잠이 된다. 나비가 날아드는 초록정원에 핀 개나리가 선명하다. 오랜만에 깊게 느껴보는 새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다. 그 누구도 그 하나도 무의미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날은 포르투 여행을 뽐내고 싶었을까. 포르투의 일부라 여기는 ‘빌라 노바드 가이아‘에 들렀다. 문득 남들의 포르투 여행 리뷰를 읽다 여기를 가야겠다 생각했다. ‘포트와인’의 본고장에 왔으니 역사와 과정을 담은 와이너리에 가야 했다. 유일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는 ‘테일러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동행을 구하는 대신 1부터 10까지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예약내역을 보여주고 한국어 오디오를 받아 들었다. 개인 이어폰을 챙겨 오지 않았는데 덕분에 90년대로 돌아간 듯했다. 휴대폰 탄생 전 유선 전화기를 받는 모양새로 검정의 기다란 오디오를 귀에 가져다대니 신기하게 한국어 음성이 들렸다. 그렇게 집중했다.
포트와인의 시초부터 이곳이 생겨나기까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머릿속에는 엄청난 포트와인의 세계가 펼쳐졌다. 오크통이 오솔길처럼 느껴졌고 다람쥐들이 도토리를 먹는 모습이 그려졌다. 수십 개의 오크통이 쌓여 자연스레 산책로가 생겼다. 와인저장고는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시원했고 이곳에는 한국인들도 꽤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 와인무료시음을 위해 달려가고 있었으나, 나는 무려 3시간 동안 이곳을 지켰다.
프랑스 와인을 수입하지 못하게 된 영국, 그 영국인이 포르투에서 와인 사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달달한 포트와인은 숙성 과정보다 그 역사가 지닌 의미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대서양을 통과해 영국으로 와인을 운반해야 했기에 도우루강에는 피의 역사도 깃들어 있다. 그것을 알고 나니 포도밭이 있는 ‘도우루 밸리’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
한동안 공사로 인해 불이 켜지지 않는 ‘동 루이스 다리’가 원망스럽지는 않다. 은은한 조명이 강에 비췄기 때문이다. 하늘에만 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물결에 따라 요동치는 강의 별들이 아름답고 눈부셨다. 잔잔한 ‘드뷔시’의 아라베스크가 들리는 것 같다.
사람으로 북적였지만 조용했다.
내가 머문 한 달 내도록 공사했기에 좀처럼 ’동 루이스 다리‘에는 집중하지 못했다. 그 덕분에 도우루강에 지는 일몰과 붉은빛 물결을 잊을 수 없다. 어느 날은 먹구름과 함께 사라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보내며 손을 흔들었다. 어떤 모습이든 멋지고 아름다웠다.
2주가 흘러 남편을 초대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