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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혜 May 22. 2024

샤넬백 대신 포르투갈 한 달 살기 (6)

그의 슬픔은 나의 기쁨이 되었다.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면서 자신을 잃었다. 동료들과 상사의 시기와 질투도 있었다. 고작 마트 단기 아르바이트와 런던 스타벅스 바리스타로 근무한 경력, 그리고 여수엑스포에서 안내원을 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쳤다. 인간으로서 사유하는 능력이 상실되었고, 알맹이 없는 속 빈 강정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숱한 시간, 그 5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서야 내 주변에는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심지어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어리고 불쌍한 여자. 누구도 손 내밀어주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 속에 내던져져 유일한 탈출구를 찾고 있던 것이다


나의 포르투갈 한 달 살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포르투 시내를 관광하며 일주일을 겨우 보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한 달 살기 도시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가는 기대보다 저렴하지 않다.’

‘이런 한 달 살기도 괜찮을까?’


누구는 당일치기로, 누구는 짧은 여행으로, 누구는 한 달 살기로 방문하는 ‘포르투’.

나에게 포르투는 짧은 여행으로 마쳐야 할 곳이었다고 생각한다. 분명 빈티지한 건물과 아줄레주 타일로 장식한 ‘상벤투역’, 조명이 없어 멋스러운 ‘동 루이스 다리’, 포르투가 훤히 내다보이는 ‘클레리구스 성당’, 바람을 따라 흐르는 버스킹 명소 ‘포르투 대성당’과 ‘히베이라 광장’ 등 감탄사를 자아내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내가 로컬이 되어 머물 때 느꼈던 감정은 따분함과 지루함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나 홀로 옥탑방을 쓰면서 공용주방에서 사람들과 인사정도만 하지 대화의 물꼬를 트는 등의 관심이 너무 부족했다. 그런 와중에 그 늙은 망나니 같은 아저씨가 관심을 줘서 스트레스였던 것일 수도 있다.


사실 그 아저씨의 이름도 잊어버렸다. 대화와 행색은 생생하다. 나로 인한 대화 단절은 그를 실망시킬 것이다. 그는 절망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나의 존재의 가치와 무한한 행복을 느꼈으며 한치도 알 수 없는 인생에 위로를 받았다.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단순한 공감일 뿐이다. 그는 나와 함께 여행하기를 바랐다. 그의 삶이 나와 같다고 치부할 때면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끓기 시작했다. 나의 치유는 그에게 필요한 것과는 사뭇 달랐지만 냉정해질 수 없었다. 우유부단함과 착한병으로 가능성을 열어준 것일지도? 언제 세탁했는지 모를 무릎이 늘어난 회색추리닝과 남루한 검은색 티셔츠 입고 브릿지를 넣어 흰머리와 뒤섞인 흑발로 내 앞에 서있다. 다행히 인상을 찌푸릴만한 요소는 더는 없었다.

그에게 딸린 식구는 고양이 한 마리와 개 한 마리다. 새침한 고양이와 달리, ‘잭Jack’은 애교가 넘친다. 녀석은 다섯 살로 덩치는 나만하다. 그는 늘상 식구들과 주방 테라스를 지켰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아 낯설지만 그들을 유심히 지켜본 결과 필요에 의해서 집합해 있는 것 같았다. 그도 그렇게 말했다. 좁은 방에서 견디지 못한다고.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는 거야?”

“한 달 동안 있을 거예요.”

“왜?”


목적을 묻는 질문에 그저 나를 찾고 있다고만 답했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길상하고 주름진 푸석한 얼굴에 당황함이 묻어있다. 여전히 무릎 나온 추리닝이 거슬렸지만 애써 그의 눈을 바라본다.


“당신은 언제까지 있나요?”

“임시적으로 이번달까지야.”

“임시적으로?”



그는 떠돌이 신세지만, 나는 돌아갈 집이 있다. 아주 아늑하고 포근한 보금자리가 있다. 삿대질을 당해도 분란을 만들어도 뒤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안식처가 있다. 어릴 적에는 학교 운동장에 가서 울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내 집에서 실컷 울어도 되고 소리쳐도 된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도 어떠한 압력을 느끼지 않는 집이 있다. 천냥빚을 갚는 말 한마디보다 절실한 내 공간이 있다. 값으로 따지면 우주를 갖다 줘도 안 되고 빌게이츠 딸로 태어날 수 있다고 해도 안 된다. 엄마의 품이 깃든 아궁이가 있는 따스한 황토방의 시골집이라면 모를까.


그 순간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비열하게도 비교를 거쳐 존재를 실감했다. 우습지만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아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어쩌면 가벼운 또 쉽게 해결되는 문제를 너무 크게 생각했을지도.


진득한 슬픔이 담긴 눈이 자꾸만 나를 자극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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