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은 귀한 것이다.
밤마다 그가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망울과 세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눈가 주름까지. 황무지 사막에 솟아난 얇고 얇은 나무의 나뭇가지 같았다. 기댈 수 있는 여유나 화끈한 여름날씨 같은 열정이라던지 무르익은 나뭇잎과 얼어버린 겨울나무도 비할바가 아니었다. 180센티가 되는 마른 몸에 무르팍이 늘어난 회색바지가 3배 줌 확대되어 담겼다.
나는 8살 때부터 친구가 좋았다. 친구와 나눈 희로애락은 부모의 다툼도 잊게 했다. 무의식적으로 감정결핍을 채우는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아프면 여자친구들과 어울렸다. 친구에게 보살핌을 받고 사랑도 느끼며 부족한 마음을 달래었다. 지금도 남자친구들보다 여자친구들과 가깝게 지낸다. 머리가 커서는 엄마의 가정사를 어림짐작으로나마 이해하고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슬픈 눈동자가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소중한 일상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진심 어린 따뜻한 사랑을 주고받지 못한 사람이거나 홀로서기가 힘든 사람일 것이다. 분명 ‘용기’가 따르는 것들은 다분하다. 나의 포르투갈 한 달 살기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고 아직도 그 용기를 시험하고 있다. 그 시도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그에게서는 어떠한 봄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살아있어도 죽은 사람 같았다.
저녁은 직접 해 먹거나 간단히 먹기로 다짐했다. 매일 사 먹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여유치 않았고 숙소에서 충분히 걸어서 갈 수 있는 식료품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아침 혹은 저녁에 그를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주방은 그의 독차지였고 애완견과 애완묘의 놀이동산이었다.
지중해가 담긴 새하얀 건물에 장기투숙객은 단 두 명이었으니 말이다. 사전에 한 달치를 모조리 냈기에 그리고 침대가 자주 흔들리는 것 외에는 불평할만한 건덕지는 없어서였다. 공용주방을 갈까 말까 수십 번을 고민했다. 나의 새로운 골칫거리였는데 스스로 풀고 싶은 숙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트레스였고 별안간 나타난 골칫덩어리였다. 한마디를 하면, 열 마디로 화답하는 그의 모습에서 애절함이 느껴졌다.
“저는 영어를 잘 못해요.”
“그래도 알아듣는 것은 잘하잖아?”
“...”
그의 속사포 영어에 머리가 지끈했지만 공부하는 샘치고 경청했다. 내 손에는 깨끗이 씻은 라즈베리가 담긴 사기그릇이 있다. 그 작은 그릇이 돌처럼 느껴질 때까지 서있으면 그제야 대화가 얼버무려졌다.
‘평생 말 한마디를 안 하고 산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름진 입가를 지나 누런 이 사이 나오는 단어는 몰라도 기댈 곳이 간절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30대가 50대의 말을 딱 잘라 끊는 용기가 있었더라면. 처음에는 ’이웃 주민‘ 정도로만 생각했던 나다. 혹여나 일이 생기면 도움을 받을지도 모르니깐.
”미국사람이면 어떻게 한 달을 지내요?“
”사실 미국 비자와 영국 비자를 가지고 있어.“
장기투숙객으로서 그에게 물었다. 그는 미국 아버지와 영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대화가 있은 다음날에는 자신의 재력을 과시했다. 나는 백수라고 하였고 그는 유산상속자라고 했다.
“경혜, 다음 여행지는 어디야?”
“포르투갈 남부로 떠날 거야.”
프라이버시를 침범한 그의 질문에 답하였다. 그러면 또 그렇게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한 동양 여자친구가 있다는 둥 다음 여행을 함께하자는 둥 선을 넘는 이기적인 대화에 신물이 났다. 남편의 존재를 밝히지 않은 것은 내 개인적인 이유에서였다. 주체적인 개인이 되기 위함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대화에서 나의 입지는 좁아졌고 ‘네 혹은 아니요’ 외에는 할 수 있는 답이 없어진 때였다.
그러고는 밤마다 그를 떠올렸다. 실은 그에게서 연민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알고 싶지 않은 가정사. 사랑하는 존재. 마음의 고향. 무지해서라면 정말이지 슬픈 일이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린다. 시간이 갈수록 깊숙이 박힌다. 영양분을 빨아들이면 성장하고 환경에 따라 생명이 좌지우지된다. 고이면 죽는 것이고 순응하면 꽃을 피울 것이다.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란 나무는 크고 멋지다. 비가 오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핀 생명은 값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