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경혜 Jun 19. 2024

베네치아의 여인들

친구의 정의

그때가 처음이었다. 네모난 강의실에서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귀에 꽂힌 게. 학생들은 우아하게 손을 마구 휘젓던 선생님을 ‘게이’라 지칭했다. 나는 그 행동이 그저 크고 특별하다며 개성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게 대수야?‘


어떤 누구와도 관계가 가능하다 배웠다. 심지어 동물 사물들까지도. 또 폭력배일지라도 나와의 관계에 문제가 없다면 인연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실제로 만 12살에 친했다 생각한 친구가 있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이유 없이 친구를 두들겨 패고 다닌 것이 발단이었는데, 그 일이 있고서는 전교에서 알아주는 ‘쌈짱’으로 유명해졌다.

선생님들은 일제히 그 아이를 대놓고 ‘문제아’로 낙인찍어버렸다. 나와 친했던 친구들마저도 그 아이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우리엄마가 절대 어울려선 안 되는 존재라고 못박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생각에 놓였다.


‘왜 우리 엄마는 아무런 얘기도 없는 것이지?’


폭력은 잘못된 것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학생을 선도해야 할 선생들이 학부모를 모아 그런 얘기를 전했다고 하니 어린 나도 의아하고 의문이 들었다.

'훈육이 어려워서?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보란 듯이 나는 그 친구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남들보다 가까워졌다. 그러고 나니 이상한 소문이란 게 돌기 시작했다.


옆통수가 따가워 고개를 휙 돌렸더니 수군덕대는 아주머니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 내용은 안 들어도 뻔했다. 한쪽만 올라간 입꼬리에 흰자만 보일듯한 눈초리로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나를 빤히 보고 욕하는 그들에게서 경멸을 느꼈고 그때 나의 심장에는 자물쇠로 조여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주홍글씨가 쓰여졌다. 선과 악은 공존했다. 그들은 선의 편에서 악을 논했다. 순식간에 공기의 흐름은 바뀌고 있었고 나는 중앙선에 설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나의 이상한 기준이 생긴 것에는 엄마의 무관심이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아빠에게 맞고 살던 엄마는 나를 방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릴 적 엄마는 아버지가 술을 거하게 마시고 온 날이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정점에 달하고 나서야 엄마가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감정이란 걸 알게 되고 슬픔은 심연으로 향하는 길이라 믿게 되었다. 엄마의 사랑은 불완전한 가정에서 꽃 피우기에 역부족이었고 나의 상태는 여실히 드러났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무언의 감정이 결핍이 되었으니 여자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은 나에게 오아시스였다.


최선의 생각이 무엇이길래. 존재는 하는 것인지 선동되어 버린 군중이 누구를 공격하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화살은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은 역시 그렇듯 시간에 바짝 기대 있었다. 나와 그 친구는 자연스레 멀어져 갔다. 마주했지만 동일선상에 설 수 없었고 대화는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나의 첫 스쳐간 가슴 아픈 인연이었다. 갓 교복을 벗고 친구에게서 그녀의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외모지적에 직업까지 완전히 깎아내렸고 살기 위해 관심이 필요해 용기 낸 그녀는 선의 편에서 여전한 악이 되어 있었다. 치명적인 낙인이 되어 또 비수가 되어 온천지를 떠돌고 있었다.


나는 가슴에 멍이 든 채 20대를 졸업했고 서른 중반이 되어서도 암처럼 번진 어둠은 밝은 곳을 피하게 했다.


약자. 사회적 병패에 물든 시선에서 생각했다.

약자라 믿었던 그에게서 불현듯 스쳐갔다. 나와 친했던 친구는 하나같이 가슴에 멍이 든 사람이었다. 정이 갔던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남는 것은 연민과 불안한 애정이었다. 엄마가 죽었거나 왕따를 당하거나 이혼을 했거나 동생이 자살을 했거나. 내 아픔이 묻히는 이야기들을 수집하면서 친구라 불렀던 그들은 대리보상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비로소 여지껏 왕따로 지내면서 잘못된 관계를 들어냈고 가슴이 저려와도 그것이 온전한 나임을 깨닫게 했다.

친구는 단순한 즐거움을 함께하는 것이고 대화의 갈래가 한방향으로 뻗어있는 것이다.

그것이 필요하다면 그 사람이 되어야 하고 적극성이 필요된다. 애석하게도 태어날 때처럼 외로운 신념은 변함이 없는 상태였다. 우울한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줄 존재는 나여야 돼서. 나라서. 그 슬픔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다 잠시 환기를 시키기 위해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향했다. 나라는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서.


이전 21화 샤넬백 대신 포르투갈 한 달 살기 (마지막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