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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과 대장 (이등병)

by 제이 Jan 08. 2025

19XX년 4월, 나는 용산에 있는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에서 통역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 당시 한미연합사 사령관은 미군 대장이었고, 부사령관은 한국군 대장(★★★★)이었다.

다음은 내 입대동기 박모 이병의이야기다.

박이병은 논산훈련소 6주, 평택 신교대 3주 훈련을 마치고, 용산 한미연합사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군생활이 처음이라 어리버리한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박이병은 다른사람보다 그 어리버리함이 좀 더 심한 편이었다.

어느 날 작전장교 고소령이 박이병에게 말했다.

“어이, 박이병, 이 봉투 연합사 부사령관실에 좀 갖다주라.” "옙!"

박이병은 5분 거리에 있는 한미연합사 본부건물로 걸어가 2층 부사령관실에 도착했다.

위압적으로 생긴 문짝에는 “Deputy Commander, CFC”이라고 씌어있었다.

박이병은 지체없이 “똑똑똑!” 노크를 했다.

오후시간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던 사성장군은 뜻밖에 노크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이 문을 예고없이 두드릴 수 있는 사람은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연합사 사령관 미군대장, 이렇게 3명 이외에는 없는데, 이게 무슨 비상상황인가?

대개의 경우 옆방 부속실을 통해 연락이 오고, 포스타는 그 중 극히 일부의 인사만 직접 만난다.

“도대체 이 시간에 누가 내 사무실 문을 두드린단 말인가?”

급히 군복을 단정히 하고 거울을 확인한 후 문을 연 포스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새까만 얼굴에 노란 송충이 한마리 계급장을 단 이등병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황당한 나머지 할말을 잃은 대장은 “어… 자네… 여기서... 뭐 하나?”

“예, 작전장교 고소령이 이 봉투를 부사령관님께 갖다드리라고 했습니다.”

포스타는 이 황당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오케이,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내 방으로 들어와 봐.”

훈련으로 새까맣게 그은 얼굴의 박이병을 보니 최근 입대해서 최전방으로 배치된 아들이 생각나 박이병이 불쌍해 보였다.

대장은 부사령관 집무실 소파를 가리키며,

“자네, 여기 앉아서 얘기 좀 할까. 입대한지 얼마나 됐나? 군생활은 할만한가?”

박이병은 그 자리에 앉아서 쫄따구로서 경험했던 부조리한 일들과 병영내에 존재하는 불합리한 사항들을 솔직하게 가감없이 말씀드렸고, 사성장군은 그 말에 경청했다.

2-30분이 지나고 대화가 대충 마무리되자, 대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오늘 너하고 기탄없이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다. 네 요구사항은 100% 반영할테니 걱정말고 돌아가라. 그리고 오늘 여기서 있었던 일은 절대로 고참들한테 말하지 마라”.

박이병은 영문도 모른채 사무실로 돌아갔고, 이 뜻밖의 만남 덕분에 나를 비롯한 나머지 동기들은 남은 군생활을 좋은 환경에서 보내게 되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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