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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띵워킹 Feb 27. 2024

세련된 반대를 잘 하는 동료가 좋더라고요

내 의견에 반대해도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의 특징


"유경님은 어떤 동료랑 일하는 것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서 이 글은 시작됐다.

그때 내가 했던 답변은 "저는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동료를 좋아해요."였다.


답변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나오는 답변이야말로 평소의 내 생각을 잘 보여주는 것 아닐까?

그래서 이 대답을 스스로 인지한 후에, 같은 질문을 두고 다양한 각도의 시선에서 다시 뜯어봤다.

내 머릿속에, 경험 속에 흩어져 있을 '세련된 반대'에 대한 단서들을 찾기 위해 틈날 때마다 떠올리며 메모장을 끄적였다. 아래의 물음들을 떠올리며 휘갈겨본 메모장의 내용들을 조금 긴 글로 다시 정리해 봤다.


'세련된 반대', 내가 스스로에게 해본 질문들
Q1. 그래서 '세련된 반대'가 정확히 뭘까?
Q2.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Q3. 나는 어떤 의미에서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동료를 좋아하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반대, 그러니깐 세련된 반대란 게 대체 뭘까?


이 질문에 답하려 할 때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떠오른 책 속 한 구절이 있었다.

<팀워크의 부활>이란 책에서 정의한 '신뢰'의 내용이다. (팀에서 제대로 된 팀워크라는 걸 시도해보고 싶은 모두에게 이 책을 강추 강추 강추한다!)


'신뢰'란 모두가 내 편이라는 생각과는 다른 겁니다. 서로 신뢰한다고 해서 상대에게 압박을 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뢰란 팀의 구성원이 언제 동료를 압박해야 할지 그때를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팀에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 <팀워크의 부활>, 패트릭 렌시오니


이 책에서 정의한 신뢰는 내가 그동안 ‘신뢰’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를 확 바꿨다. 그냥 무조건적으로 내가 옳다 생각하고 믿고 맡기는 것을 ‘신뢰’라 생각했는데 그건 너무나도 저차원임을 깨달았다.


내가 상대를 압박해도, 애정이 있기에 압박한다고 받아들일 거라는 ‘신뢰’가 있기에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 때나 남발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때에’. 그런 의미로 이 책에서 정의한 신뢰는 ‘완전한 솔직함(radical candor)‘ 보다 전 단계에 우리 관계에 무엇이 필요한 지 정리해 준다. 신뢰가 없으면, 솔직함은 의미가 없다. 그저 불쾌함으로 끝날 여지가 크다.


누군가 내 의견에 솔직하게 반대해도 내 마음에 해가 되지 않았다면, 그건 반대 의견을 표한 사람이 아주 세련되게 잘 해냈기 때문이다. 그 세련됨 속에 ‘신뢰’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세련된 반대는 자기주장만 앞세운 무지막지한 반대가 아니다. 반대하는 대상이 잘 되었으면 하는 애정이 먼저 선행되기 때문에 위에 소개된 ‘신뢰’와 비슷한 의미인 것 같다. 팀 혹은 나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동료가 정확한 때를 알고 해 오는 반대가 내가 생각하는 '세련된 반대'이다.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사람에겐 어떤 특징이 있을까?


[특징 1]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사람에겐 '잘 관찰해서 쌓은 팩트(=데이터)'가 있다

아무리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라 한들,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 한들 다짜고짜 반대하는데 좋을 리 없다. 그러다가는 의 상하기 십상이다.


이 ‘다짜고짜 반대’는 주로 모든 것을 뭉그러뜨려 말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참사 같다.

김영하 작가님이 학생들에게 ‘짜증 난다’는 표현을 금지시켰다는 인터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짜증’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많은 단어를 퉁쳐서 감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출처 : 유퀴즈


‘섭섭해, 불안해, 슬퍼, 속상해’라고 말하면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텐데 ‘짜증 나’라고 이야기되는 순간 다음 이야기가 차단된다. 이처럼, 무언가에 반대할 때 반대하게 된 ‘이유’를 스스로 잘 캐치하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표현하게 된다.


A | OO님, 요즘 일에 조금 마음이 뜬 것 같아 보여요.

B | 팀장님, 그런 식 일처리는 조금 주먹구구식인 것 같습니다.

C | 어차피 안 되지 않겠어요?


그럼 누가 말했든 불쾌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사람들은 떠오르는 생각에 ‘직관‘의 탈을 씌워 반대하지 않는다. 본인이 관찰한 것, 경험한 것, 공부한 것을 토대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건넨다. 이야기를 듣는 상대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Better A | OO님, 지난주 미팅 때 업무로 바쁜지 노트북을 계속 보시더라고요. 업무 중 자리 비운 시간도 조금 길어지는 것 같고. OO님이 요즘 업무하는 데 지장을 주는 일이 혹시 있을까요? 업무에 지장을 주는 정도의 문제라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는지 이야기해 줘요.

Better B | 팀장님, 지난번 마케팅 반응률이 OO%로 저조했는데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조금 의아했어요! 혹시 적용 검토 요청드렸던 개선 방안이 채택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아직 검증이 안 된 건이라면,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Better C | 사내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3년 전에 런칭했었는데 별 효과가 없었어요. 그때는 A, B, C조건 하에서 진행했었는데 이번엔 혹시 달라진 컨디션이 있을까요? 동일한 컨디션이라면 어떤 것을 바꿔서 진행해 볼 수 있을지 같이 팀에서 논의해 보면 어때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되는 반대가, 내가 생각하는 ‘세련된 반대’이다. 구체적이고 납득 가능하다. 이렇게 말해주는 동료가 주변에 있다면 정말 감사할 일이다. 결국엔 관찰 데이터가 쌓여야 저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건데, (모두 잘 알겠지만) 바쁜 회사생활에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저렇게 관찰한다는 건 웬만한 애정이 없고선 힘든 일이니깐.




[특징 2]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사람에겐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충돌하고자 하는 에너지(=진심)'가 있다

그렇다. 애정이 있어야 관찰을 하고, 세련된 반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건 정말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에너지’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생각한 건 최근 성시경 님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박진영 님의 인터뷰였다.

내가 볼 때 에너지가 제일 필요한 게 두 개인 것 같아.
열심히 살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고 올바르게 살려면 에너지가 필요해.
출처 : 성시경 <먹을텐데>


누군가에게 세련되게 잘 포장해서 반대를 전한다는 건 결국 일이든 사람이든 나아지게 하기 위함이다. 내 기준 이 과정 전체는 ‘열심히’ 혹은 ‘올바르게’ 사는 영역 속에 있다. 누가 해달라고 한 일도 아니고,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통으로 일할 때는 결코 필요 없을 에너지를 들여주는 사람. 동료를 위해, 팀을 위해, 일을 위해 발품을 팔아주는 사람이 세련된 반대를 할 수 있다.


특징 3.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동료에겐 '눈치'가 있다

눈치라는 단어에 대해서 선입견이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왠지 모르게 비굴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그런데 눈치를 이렇게 정의해 본다면, 이 역량이 회사생활에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확 와닿을 것이다.


눈치 :
1. 어떤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
2. 다른 사람의 기분을 헤아리고 측정하는 능력과 영리한 기술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려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치고) 나는 회사 상황에 한정해 1번 눈치의 의미에서 ‘세련된 반대’를 논해보고자 한다.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동료는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한 회사나 팀의 상황/일이 돌아가는 패턴/현재 팀 혹은 회사의 리소스 상황에 대해 눈치를 봐준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 회사 내외부로 현재 어떤 이해관계 흐름이 있는지
- 현재 일을 진척 시킴에 있어 완성도 외에 우선순위에 어떤 것을 올려야 하는지 (속도 or 비용절감 or 근본적 가치 or 팀워크 등등)
- 이 타이밍이 적절한 업무 타이밍인지 (보고시점 or 배포시점 or 안내시점 등등)

업무 담당자로서 기한과 완성도에 집중하다 보면 놓치는 것들이 생기는데, 주로 이런 것들은 더 넓은 시각에서 봐야 하는 것들이다.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것이 회사 생활에서의 센스 있는 눈치라 생각한다. 내 경험상,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눈치가 있다.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동료와 함께하면 재밌게 티키티카 하다가 정-반-합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동료가 왜 좋을까? 내 경험상,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사람은 내 의견에 다양성을 확보해 주는 사람이다.


폭력적인 반대가 폐쇄를 불러온다면, 세련된 반대는 ‘다음’을 끌어온다. 생각해 본 적 없던 ‘다음’을 이야기하고 싶게 만들어 티키타카가 된다. 이 티키타카가 몇 번 발생하다 보면 결국 ‘정-반-합’의 순서로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냥 반대가 아니라 ‘합’의 단계로 나를 던지고 싶게 만드는 반대가 ‘세련된 반대’다.


결국, 나도 사람인지라 나에게 도움이 되고 팀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동료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내가 못 보던 것을 보게 하고, 내 시야를 넓혀 주고, 결국엔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의 가짓수를 늘려주는 동료이니까.


그러니. 무언가에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땐 다짜고짜 반대하지 말고!

잘 관찰해서 쌓은 팩트와 함께 좋은 에너지를 들여 선한 의도로 눈치 있게 반대표를 던지길 바란다. 그럼 원하던 바로 더 잘 유도할 수도 있게 된다.


굿띵워킹(goodthings of working)
제가 생각하는 '회사원으로 일하는 것의 좋은 점'은 단연 '좋은 동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회의를 끝냈는데 회의가 그 자체로 너무 즐거웠던 적이 있습니다.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고 일도 재밌게 하고 서로를 위하는 동료들과 함께 해서였더라고요. 회사에서 의미도, 재미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서로의 안위를 살피고 서로의 나아감을 돕는 좋은 동료들이 있었다면 그들의 안색이 달라지진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회사가 돈벌이 수단에 그치지 않고 자아를 실현하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고, 보고, 들은 것들을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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