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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Feb 22. 2024

#10 어색해져 버린 '숙차'

입문자 차준생의 茶이야기


보이 숙차는 내가 실제 가장 많이 마시는 차이기도 하며, 많은 차를 마셔보진 못했지만, 현제까지는 가장 좋아하는 차이다. 검붉은 색의 구수한 향을 내며, 맛 또한 구수하고 깊다. 황토나 흙맛이 난다고도 한고, 맛의 표현으로는 조금 부적절 하나, 따듯한 기운이랄까? 그런 맛이 많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요즘 같은 날씨에 많이 생각나기도 한다. 차에 따라 시큼하거나 다소 꿉꿉한 맛과 향이 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다행히도 내가 마시는 고수 보이 숙차의 경우 꿉꿉하거나 시큼한 느낌은 전혀 없기 때문에 상당히 좋아하고 즐겨 마신다.


또한 보이 숙차의 경우 우려내는 과정이 그리 어렵지 않다. 찻잎과 함께 약탕기에 푸욱 끓이거나, 끓는 물로

우려내면 되며, 다른 차들과는 달리 취급상 주의사항이 적은 것 같았다. 우렸을때 색깔도 잘 나오는 편이고, 여러 번 우려도 제법 맛을 잘 유지하기도 한다. 또 맛도 제법 잘 우러나는 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 기회가 닿아 제대로 우려낸 숙차를 마셔볼 기회가 있었다. 그날은 여러 종류의 차를 마셔보았기 때문에, 푸욱 끓여져 잘 우려진 숙차를 빨갛고 예쁜 보온병에 담아 가져가서 마셔보라고 주셨었다.


내가 집에서 즐겨 마시는 찻잎과 똑같은 찻잎으로 끓여낸 숙차. 물론 나 같은 입문자가 아닌 전문가가 맛을 낸 차의 맛이 기대되기도 했지만, 아주 다르지는 않을 것이리라 생각했다. 물론 보통 때 나는 끓인 차보다는 우려낸 차를 즐겨 마시지만, 나 역시 가끔 끓여 마셔 보기도 했기 때문에, 충분히 잘 알고 익숙한 맛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제대로 맛을 낸 숙차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더 훨씬 맛있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허투루 찻잎을 우려 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그 맛의 차이를 대충 묘사해 보자면, 내가 우린 숙차의 향은 입안을 맴돈다고 한다면, 그 숙차의 향은 입안은 가득 그리고 콧속까지, 그 구수한 향이 매워지는 느낌이었다. 너무 다른 맛에 놀랐고 또 너무 맛있었다. 그 경험 덕분에 내가 제일 자주 마시고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숙차를 소개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져, 여러 번 글을 지우다 쓰다를 반복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마시고 있는 것이 진짜 숙차의 맛인지 조차 확신이 없어졌다. 그야말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숙차와 어색해져 버렸다.


지금이라도 숙차의 진한 맛을 알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고 또 좋았지만, 조금은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여태껏 숙차는 나름 자신 있어해서 친구들에게도 많이 대접했던 차인데, 친구들에게도 어설픈 맛을 보여준 것 같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의 양, 물의 온도, 우려내는 시간, 찻잎의 양, 생수의 종류, 다기 등등 갖가지 요인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때로는 찻잎의 양이나 물의 양을 늘려도 보고, 좀 더 오래 우려 보기도 하며, 조금씩 변화를 줘 보기도 한다. 


차는 우리는 사람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고 들었다. 결국 나는 흔히 말하는 '똥손' 인 것 같기도 하지만 최대한 엇비슷하게 라도 맛을 따라 해 보고 싶다. 아직은 전혀 비슷하지 않지만, 나는 이렇게 그날의 빨간 보온병에 담겨져 있던, 그 진하고 구수한 향과 맛을 기억하며 조금씩 더듬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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