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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Feb 20. 2024

#09 어머니의 약차 블랜딩

입문자 차준생의 茶이야기


지난 설 연휴의 끝자락,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이른 아침, 119 구급대원의 연락을 받으시던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위층 내방까지 들려, 잠에서 깨어났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도 검사 결과 큰 이상은 없으셨다. 다만 아버지는 원래 지병이 좀 있으셔서, 다음 달 예정되어 있던 수술일정을 조금 앞당기기로 했다. 그 덕분에 요즘 어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아버지를 위해 약차를 끓이시고, 보온병에 담아 아버지가 입원해 계시는 병원으로 향하시는 일과가 추가되었다. 


어머니가 매일 같이 끓여 가시는 것은 '돼지감자'이다. 당뇨에 좋은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보면 요즘이야 집집마다 정수기가 있어 손쉽게 생수를 마실 수 있지만, 내 어릴 적에는 동네 산의 약수터에서 식수를 길어 오거나, 수돗물을 끓여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우리 집 역시 그러했으나, 끓여마시는 물이 전혀 일반적이지 않았다. 보통 그 시절 가정집에서는 보리차가 가장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난 보리차를 참 좋아했다.

하지만 어릴 적 크고 작은 병을 달고 살던 나를 위해 어머니는 항상 일반적이지 않은 것을 끓이셨다.


영지버섯이나 오가피, 결명자 같은 것은 상당히 일반적이었고, 아직까지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뿌리들, 그리고 내가 가장 싫어했던 마늘 껍질과 양파 껍질도 끓여 식수로 사용하셨다. 약으로써 가끔 마시는 거라면 나도 참고 잘 마셨을 것 같지만, 매일같이 마셔야 되는 식수로 이런 것들을 마셔야 된다는 것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다. 어린 시절 제발 평범한 보리차를 끓여달라거나 혹은 제발 정수기 사자고 졸랐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봐도 지극히 합당한 요구였다고 생각한다. 그 맛을 떠올리면 지금도 끔찍하다.


왜냐면 어머니는 위의 재료들을 섞으셔서 끓이시기 때문이다. 나름의 블랜딩이라면 블랜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전혀 맛을 고려하지 않은 블랜딩이다. 또한 조합법이나, 특별한 기준이 있으신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한 가지만 끓이셨다면 그럭저럭 마실만 할지도 몰랐겠으나, 여러 가지가 섞인 그 알 수 없는 약차는 정말이지 좋게 말해 오묘하다고 할 수 있었고 수년간 그런 걸 마셔왔기 때문에, 어느정도 적응이 가능했지만. 위에 말했듯 양파 껍질과 마늘 껍질, 이 두 가지만은 결코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자극적인 매운맛이나 향이 나는 식수라고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 두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 날이면, 항상 물맛에 투정을 부리던 나를 혼내시던 아버지도 몰래 싱크대에서 수돗물을 받아 드시는 것을 나는 몇 번 목격했다. 지금은 다행히 집에 정수기가 있어 더 이상 그 정체를 알 수 없던 약차를 마시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요즘처럼 아침마다 아버지를 위해 약차를 끓이시는 어머니를 보며, 내 어린 시절 자주 아프던 나를 위해 어떤 마음으로 그 약차를 끓이셨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양파 껍질과 마늘 껍질이 들어간 약차만은 극구 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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