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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Feb 27. 2024

#11 버리기 아쉬운 '그런 날'의 '세차(洗茶)'

입문자 차준생의 茶이야기


차를 우려 마실 때에는 공통되게 하는, 기본 준비과정이 있다. 하나는 사용할 다기들을 따뜻한 물로 먼저 데워놓는 것이고, 또 하나가 오늘 얘기할 '세차'이다. 세차란, 찻잎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불순물을 씻어 내며, 또 찻잎을 깨우는 과정이라고 한다. '찻잎을 깨운다'는 표현이 상당히 낭만적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건조되어 말라비틀어진 찻잎에 따뜻한 물을 부어 찻잎을 펴서 좀 더 잘 우러나게 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세차방법은 간단한데, 따뜻한 물로 찻잎을 빠르게 우려내는 과정으로 보통은 5초 내외로, 1회를 진행한다. 물이 너무 뜨거우면, 차에 따라 맛이 떫거나 써질 수도 있으며, 또 너무 오래 세차를 진행하면, 영양소가 세차물에 우러나와 버리기 때문에 5초 내외로 진행한다고 한다. 찻잎에 따라 어떤 차들의 경우 2~3회가 권장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들었다. 물론 위에 설명한 세차 방법은 내가 아는 일반적인 방법이며, 찻잎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세차로 쓰인 물은 당연히 버리게 되는데, 잘 써야 다기를 데우는데 한번 더 쓰기도 한다. 결국 버려지는 것은 매한가지다. 나는 무엇인가를 버리거나, 비우는데 익숙하지 않다. 물건이든, 감정이든, 기억이든, 무엇이 되었든 '언젠가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으면 찾을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보통은 그런 날은 잘 찾아오지 않는다. 어쩌면 그저 '그런 날'이 찾아오길 바라는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날'이 언제가 찾아오길 바라고 소망한다. 언젠가 '그런 날'이 찾아온다면, 꼬깃꼬깃 잘 쌓아서, 잘 보관해 뒀던 것을 예쁘게 펴 보이며, '내가 이런 날이 알았노라고', '내 잊지 않고 있었노라고', 조금은 어깨에 힘도 주며, 당당하게 거드름도 좀 피워보고 싶다. '그런 날'에 나는 분명 기분 좋게 웃고 있을 것 만 같다. 난 오늘도 그런 날을 소망하며, 이것저것을 꼬깃꼬깃 예쁘게 쌓아 여기저기 보관하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세차 후 나온 세차물까지 보관할순 없다. 버릴 것들은 버려야 하는데, 

나에게는 쉽지 않다. 특히 어떤 날은 유독 세차물의 색깔이 예쁘게 우러나오는 날이 있다. 

이런 날에는 '살짝 맛만 볼까?', '화초에 줘 볼까?' 싶다가도, 못내 아쉬워하며 버리고 만다.

오늘도 난 여전히 세차물 버리기를, 아쉬워하고 또 아까워하며 차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쯧, 이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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