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란과 21세기
표지 사진: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히잡, 부르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많이 착용한다. 히잡은 여성의 육체와 정신 건강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친다. / 출처: getty image, <burka>
이슬람 하면 떠올리게 되는 히잡(Hijab) 역시 여성들의 삶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서아시아 지역에서 여성이 머리에 베일(veil)을 두르는 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오래된 풍습이다. 이슬람 성립 이후에 베일 착용은 단순한 복식 풍습에서 종교적 의무로 바꿨고 이후 제도로 정착되었다.
이슬람 초기엔 무슬림 여성의 종교적 정체성을 표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히잡은 10세기 초반 이슬람 교리가 정립된 이후 종교적 금욕주의와 아랍 특유의 가부장 중심주의의 영향으로 점차 강압적이고 기이한 형태로 변질돼 갔다.
아랍어로 차단, 가림, 장막 등의 뜻을 지닌 히잡은 지역과 가림의 정도에 따라 히잡(hijab: 머리와 상체 일부만 가림, 종파에 따라 다양한 색깔과 무늬가 있는 천을 사용하기도 함), 아바야(abaya: 검은색 천으로 손과 발을 제외한 전신을 덮음), 니캅(niqab: 아바야에 얼굴 가리개를 첨가한 형태로 눈 주위만 노출), 차도르(chador: 이란에서 히잡을 부르는 명칭, 아바야는 긴 통옷 형태이지만 차도르는 가운 형태인데 아바야 보다 더 헐렁하고 펑퍼짐함), 부르카(burka: 보통 하늘색 천을 사용하며 얼굴 부위만 망사 형태이고 전신을 다 가림,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히잡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많이 착용) 등으로 나뉜다.
무슬림들은 히잡이 여성들의 정숙함과 신앙심의 표현일 뿐 결코 여성을 차별하거나 억압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에서는 여성에게 히잡을 법으로 강요하고 있으며 위반 시 가혹한 처벌이 뒤따른다.
이란에서는 비록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여성이 차도르를 착용하지 않으면 74대의 태형에 처해진다. 사실상 사형집행이나 마찬가지다. 2022년 9월 22세의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 2000~2022)가 히잡 미착용을 이유로 도덕경찰에 구금된 이후 사망했다.(출처: 김현우, '[지금 카타르] 이란, 사망 여대생 추모··· 국가 연주에 침묵‘, <여성경제신문>, 2022-11-22 / 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D%9D%90%EC%82%AC_%EC%95%84%EB%AF%B8%EB%8B%88_%EC%82%AC%EB%A7%9D_%EC%82%AC%EA%B1%B4)
2023년 10월에도 이란 소녀 아르미타 가라완드(Armita Garavand, 당시 16살)가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른바 ‘도덕 경찰’로 불리는 지도순찰대(가쉬테 에르셔드, gašt-e eršād)와 실랑이를 벌인 끝에 뇌사 상태에 빠져 결국 숨졌다.(출처: 오남석, ‘히잡 단속 뇌사 이란 10대 소녀 결국 사망… 반정부 시위 재점화하나’, <문화일보>, 2023-10-28)
탈레반 집권기에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은 즉결처분 대상이었다. 2002년 3월 11일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한 여학교에서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종교경찰 무타와(mutawa)가 히잡 미착용을 이유로 여학생들이 밖에 나올 수 없도록 교사(校舍) 출입구를 봉쇄하고 소방관들의 화재현장 접근마저 차단해 14명이 죽고 50여 명이 부상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출처: 강찬호, ‘차도르 안 입었다고 여학교 화재구조 막아, <중앙일보>, 2002-03-20)
히잡을 강요하는 법조항이 없는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들이 거리에서 성추행을 당하거나 폭행, 살해되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종교적 의무를 뛰어넘어 히잡은 여성의 육체와 정신 건강에 중대한 부담을 준다. 무엇보다 살인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서아시아 지역에서 히잡 착용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바그다드에서 동료 간호사들이 기념품으로 구입한 아바야를 호기심에서 한 번 입어봤는데, 입자마다 숨이 턱 막힐 만큼 덥고 답답해서 단 1분도 버티기 힘들었다.
그나마 가난한 여성들은 값싼 합섬 재질의 히잡을 착용하는데, 그럴 경우 통풍이 원활하지 않아 위생상의 문제까지 일으킨다. 가끔 바그다드 거리에서 아바야를 덮어쓴 여인들이 옆을 스쳐 지나갈 때면 그들의 몸에서 쏟아지는 악취에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또한 히잡은 비만과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 히잡 때문에 몸매를 드러낼 일이 없는 서아시아 여성들은 체중관리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게다가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사회 분위기와 더운 날씨 탓에 운동부족까지 겹쳐 서아시아 여성들의 비만은 심각한 수준이다.
헐렁한 서아시아 의상이 아니고선 도대체 맞은 옷이 있을까 싶을 만큼 대다수 서아시아 여성들은 뚱뚱하다. 실제로 알 라지 병원을 찾아온 40대 이상의 여성 환자들은 한결같이 무릎 관절염이나 당료, 고혈압 등 비만으로 인한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팀원들은 케토톱을 이라크에 가져다 팔면 부자가 되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여성 환자들을 도맡아 진료했던 권○○ 선생은 저 놈의 아바야만 벗겨버려도 여성 환자의 반은 줄어들 거라며 혀를 찼다.
히잡은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여성들에게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한다. 평생 히잡을 착용해 온 여성은 히잡을 쓰지 않으면 마치 자신이 여러 사람 앞에서 알몸이 된 것 같은 수치심과 불안감을 느낀다고 한다. 부르카가 정도가 가장 심한데, 일부 여성은 부르카를 입지 않으면 광장공포증(agoraphobia)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서아시아 여성들은 보통 10세를 전후해 히잡을 착용한다. 알 라지 병원을 찾아온 해맑은 미소를 지닌 어린 이라크 소녀들이 앞으로 평생 거추장스러운 히잡에 갇혀 살 생각을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제 8 장 이슬람 여성의 굴레 - 히잡, 교육, 그리고 인권 문제 0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