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란과 21세기
표지 사진: 전성기 압바스 왕조의 영토와 무역 네트워크 / 출처: 나무위키, <아바스 왕조>
한때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있던 문명이 이처럼 극적으로 몰락한 예는 세계사를 통틀어 이슬람을 제외하곤 달리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번성하던 문명이 쇠퇴하거나 멸망하는 것은 대개 내우외환(內憂外患) 때문이다. 이슬람 문명도 예외는 아니다.
8~10세기 절정에 올랐던 이슬람 문명은 11세기 후반 셀주크 튀르크(Seljuk Empire, 1040~1157)와 유럽 십자군의 침입이 이어지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무려 200년간이나 지속된 십자군과의 전쟁은 이슬람의 입장에서 보면 비록 승리했다고는 하나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전쟁이 끝났을 때 기진맥진한 이슬람 제국은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1258년 파멸적인 몽골의 침략은 허울만 남은 압바스 왕조(Abbasid dynasty, 749~1258)를 말 그대로 완전히 끝장내 버렸다. 그 후 150년간 이어진 몽골의 지배는 이슬람 문명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이슬람에 동화되기는 했어도 몽골족은 야만적인 이민족이었고, 가혹한 수탈과 파괴로 일관한 몽고의 지배는 이슬람 문명을 깊은 침체의 늪에 빠뜨렸다.
15세기 중엽 오스만 튀르크가 중근동 지역을 재통일하면서 이슬람 문명은 잠시 중흥기를 맞는 듯 했으나, 강성한 오스만 튀르크 제국(Ottoman Empire, 1299~1922)도 이슬람 문명의 전반적인 쇠퇴를 막아내지 못 했다.
17세기 이후 문화적 활력을 소진해버린 이슬람 문명은 끝내 근대화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초라하게 몰락해 갔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외세의 위협에 직면한 국가의 대응방식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적극적인 개혁과 개방을 통해 국력신장을 꾀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국수주의(國粹主義)에 물들어 고립과 은둔에 빠져드는 길이다.
근세 이후 서양은 전자를 택한 반면 동양은 후자를 택했다. 동서양의 상반된 선택은 16세기 이후 약 5백년간 이어진 서세동점(西勢東占)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이슬람 세력 팽창에 위협을 느낀 유럽이 이슬람의 선진 문물을 흡수해 근대화를 주도하며 세계의 중심세력으로 급부상하는 동안 역설적으로 이슬람 세계는 가파른 쇠락의 길을 걸어갔다.
이슬람 문명을 몰락으로 이끈 외부 요인이 이민족의 침입이었다면 이슬람 문명을 안에서부터 서서히 무너트린 것은 다름 아닌 이슬람교 그 자체였다. 이슬람교는 이슬람 문명의 핵심이자 최고의 문화적 업적이지만 이슬람 문명을 정체시키고 근대화를 가로막은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9세기 중반에서 10세기 초반 하디스(Hadith: 무함마드의 언행과 순나(Sunnah)를 기록해 놓은 책이다. 순나란 무슬림들이 지켜야 할 종교적 관습과 규범을 의미한다. 하디스는 이슬람 교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종교서이다. 무슬림들은 하디스를 꾸란에 버금가는 신앙의 길잡이로 여긴다. 그리고 하디스는 꾸란과 더불어 샤리아(Sharia: 이슬람 율법)의 가장 중요한 법원(法源)이기도 하다.)와 샤리아가 정립되면서 비로소 이슬람 교리는 완성된 체계를 갖추게 되는데, 그 후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이슬람 문명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슬람교는 완전무결한 유일신을 믿는 종교다. 무슬림에게 신의 계시에 따라 정립된 이슬람 교리는 완벽한 절대 진리이며 어떠한 비판이나 의심도 허용되지 않는다.
과학 발전은 모두 ‘왜(Why)?’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종교적 도그마(dogma)는 과학적 탐구심의 싹을 잘라버린다. ‘왜(Why)?’라는 질문의 답이 ‘인샬라(ن شاء الله, In shāʾ Allāh: If the God's will. ‘신의 뜻이라면.’이라는 의미로 무슬림들이 즐겨 쓰는 관용구이다.)’가 돼버리면 과학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모름지기 완벽한 것은 더 이상 개선되거나 진보할 여지가 없는 법이다. 종교가 모든 것의 절대적 기준이 되면서 이슬람 문명은 점점 활력을 잃어갔다.
십자군 전쟁 이후로도 이슬람은 몽골, 튀르크 그리고 18세기 이후 서구 세력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외세의 침탈에 시달렸다. 잦은 외세의 침략으로 국수주의가 심화되면서 이슬람은 점점 더 교조적이고 배타적인 종교로 변해갔다.
15세기 이후 이슬람에서 인문주의 전통과 관용의 정신은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고 남은 것이라곤 낡은 종교 관습과 신본주의(神本主義) 그리고 맹신뿐이었다. 교조주의(敎條主義)에 빠진 종교의 그늘 아래서 이슬람권은 급속도로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세상이 되어갔고 이슬람 문명은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제 9 장 이슬람 쇠퇴의 원인과 이슬람의 미래 0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