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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Apr 22. 2024

<이라크 전쟁>의 불편한 진실 01

이라크 전쟁 이면에 감춰진 추악한 진실과 실상

표지 사진: 이라크 전쟁 22일(D+2)의 전황 / 출처: 김종혁, 강홍준, '[이라크 전쟁] 이라크군 거센 저항…美軍 진격 주춤', <중앙일보>, 2003-03-24





일러두기: 이 글은 제가 집필한 <<일랄 리까, 바그다드>>(2015)에 수록된 한 단원을 발췌한 것입니다. 앞서 올린 제 소설 <<꾸리 앗 딘(Coree ad-Din)>>의 배경이 된 '이라크 전쟁'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이곳에 다시 올립니다.



제 1 장  전쟁의 원인 01



이라크에서의 경험담을 쓰면서 그곳에서 벌어졌던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라크 전쟁(The Iraq War, 2003.03.20. ~ 2011.12.18.)은 과연 어떤 전쟁이었을까? 전쟁 직전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1937~2006)은 임박한 전쟁을 제2의 십자군 전쟁으로 규정하고 이라크 국민들에게 이교도의 침략에 맞서 지하드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한편 미국은 이라크 침공을 악의 축을 제거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라 주장하며 전 세계에 지지를 호소했다. 


양측은 서로 상대방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악에 맞서 정의로운 전쟁(Bellum Justum)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이라크 전쟁의 실상은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미국은 세계평화를 수호한다는 미명하에 전쟁을 일으켜 놓고 탐욕을 채우기에만 급급했고, 이라크는 이라크대로 국난 극복을 위해 온 국민이 일치단결해도 모자랄 판에 시대착오적인 종파분쟁에 빠져 자국의 운명을 스스로 파멸로 몰아갔다. 


전쟁을 두고 선악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이 세상에 선하고 정의로운 전쟁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전쟁은 그저 잔인하고 추악할 뿐이다. 그중에서도 이라크 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더러운 전쟁이었다.




2003년 3월 20일 새벽 5시 30분 정각 홍해 상에 떠 있던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USS Donald Cook(DDG-75)호에서 제1탄을 쏟아 올린 것을 시작으로 지중해, 홍해, 페르시아 만 해상에서 대기 중이던 미 해군 함정들이 일제히 40여 발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바그다드(Baghdad)를 향해 발사했다. 


거의 동시에 카타르(Qatar)의 알 우데이드(al-Udeid) 미 공군 기지에서는 이라크 내 주요 거점들을 폭격하기 위해 전폭기들이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약 5분 뒤 바그다드에서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면서 폭발음이 진동하기 시작했고, 곧바로 세계 언론이 앞 다퉈 공습 소식을 전하는 뉴스 특보를 내보내면서 이라크 전쟁 개전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Operation Shock and Awe @ AP.  2003-03-20


오전 6시 15분(미국 워싱턴 D.C. 현지 시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TV에 출연해 이라크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공식 천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이번 전쟁의 목적은 이라크를 무장 해제하고 그 국민을 폭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루 종일 이어진 격렬한 준비포격 끝에 오후 8시(이라크 현지 시간)를 기해 미 육군 제3보병사단을 필두로 지상군 병력이 쿠웨이트 국경을 넘어 이라크 영토로 진격함으로써 이라크 전쟁은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2002년 9월 12일 부시(George W. Bush, 1946~현재) 대통령의 UN 총회 연설을 기점으로 촉발된 미국과 이라크 간의 첨예한 외교대립이 6개월 만에 마침내 전쟁국면으로 악화된 것이다.

      

쿠웨이트 국경을 넘어 이라크로 진격하는 미 육군 제3보병사단의 M1AI SEP 에이브람스 전차 @ AP. 2003-03-20


미국은 대량살상무기(WMD) 제거, 테러지원 근절, 사담 정권 축출을 통한 이라크 민주화 추진, 이렇게 세 가지 대의명분을 내세워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한 핑계였을 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진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첫째, 무엇보다도 미국은 전쟁 그 자체가 절실히 필요했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은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 MIC: The Military-Industrial Complex)가 지배하는 사회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형성된 군산복합체는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미국 사회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가 명저 <<파워 엘리트>>(C. Wright Mills, <<The Power Elite>>, Oxford University Press, 1956)에서 지적한 대로 군부는 미국을 지배하는 "철의 삼각형(Iron Triangle)"의 한 축을 차지하는 권력집단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군대를 보유한 나라다. 미국은 상비군 145만여 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 세계 약 50개국에 자국 군대가 주둔하는 군사기지를 두고 있다. 미국에서 군부는 그 규모만으로도 이미 주요한 사회집단 중에 하나다. 


그리고 군수산업은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쇠퇴일로를 걷고 있는 미국 제조업 분야에서 유일하게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업종이 바로 군수산업이다. 미국 유수의 군수업체들은 미국 경제의 큰 축을 이루고 있으며 무기류는 미국의 10대 수출품 중에 하나다. 


미국은 단연 세계 제일의 무기 수출국이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의 세계 무기 수출시장 점유율은 평균 44퍼센트를 기록했다.(출처: Global Issues, The Arms Trade is Big Business, Global Arms Sales By Supplier Nations, 2013) 미국은 2011년 한 해에만 무기 수출을 통해 약 663억 달러를 벌어들였다.(출처: <SBS 뉴스>, 2012년 8월 27일자, ‘미국 무기 수출 사상 최대치…이란 핵 위협 증대로’, 조지현 기자) 


통계상 미국의 군수산업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10%를 점유하고 있다.(출처: U.S. Department of Commerce, Bureau of Economic Analysis - GDP by Industry Data, 2010))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통계일 뿐 실제 점유율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미국의 2차 산업분야는 알게 모르게 군수산업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겉으론 민수산업체로 알려진 회사들도 정작 무기를 생산하는 군수업체인 경우가 많다. 


자동차 업계의 Big 3로 알려진 GM(General Motors Corporation), 포드(Ford Motor Company), 크라이슬러(Chrysler Group LLC)는 모두 대표적인 군수업체들이다. 크라이슬러는 미 육군에 탱크와 장갑차를 생산해 납품하고 있다. GM은 트럭과 험비(Humvee) 차량을, 포드는 공병대가 사용하는 각종 중장비들을 각각 생산해 미군에 공급하고 있다. 


민간 여객기 분야에서 세계 1위 업체인 보잉사(The Boeing Company) 역시 미 공군에 납품하는 전투기와 폭격기를 생산하는 군수회사다. 미국의 조선업은 전적으로 군함 건조로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밖에도 미국 유수의 제조업체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군수산업과 연계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의 연구개발(R&D) 분야의 투자는 대부분 무기개발을 위해 국가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군수품 제조가 사라진다면 미국의 제조업 기반은 완전히 붕괴될 것이다. 


냉전시대 끝없는 호황을 누리던 미국의 군수업체들은 냉전 종식과 함께 큰 위기를 맞게 된다. 군수업체들에게 장기적인 평화는 곧 재앙이다. 냉전 종식으로 전전긍긍하던 군수업체들에게 9.11 테러는 구원의 메시지나 다름없었다. 


미국의 주전론자(主戰論者)들 중에 가장 간절히 전쟁을 원한 사람은 단연 조지 W. 부시 대통령이었다. 그는 9.11 사태 직후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전쟁은 지지부진했다. 탈레반 정권은 너무나 쉽게 무너져 버렸고 아프가니스탄 전쟁(War in Afghanistan,  2001.10.07. ~ 2021.08.30.)은 눈에 띌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막대한 군사비 지출을 합리화하고 국민들에게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또 다른 전쟁이 필요했다.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는 더없이 좋은 희생양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연두교서(年頭敎書, the State of the Union Address)를 통해 북한, 이란(Iran)과 더불어 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명명했다. 이라크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전쟁이 될 것이며, 사담 후세인이라는 공인된 악당을 체포한다면 9.11 테러에 대한 보복을 원하는 미국인들의 국민감정을 만족시킬 수 있을 터였다.


결국 미국은 전쟁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힘에 정점에 서 있던 미국은 자신만만하게 이라크로 쳐들어갔다.




<제 2 장  전쟁의 원인 0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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