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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Mar 02. 2024

68화. 탄광 (1)

<흑마법서> 소설 연재

 혜성이 주문을 완성했다는 말에 이태민과 박준식은 크게 놀라며 기뻐했다. 그들은 즉시 흑마법서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혜성이 쓴 주문을 궁극의 구미호의 꼬리털로 만든 종이에 새기는 일이 첫 단계였다.


 그 작업에만 일주일이 걸렸다. 혜성이 쓴 주문이 워낙 방대했기 때문이다. 종이에 주문을 새기는 일은 서점 안의 마법의 기계가 맡았다. 세 사람은 종이에 주문이 다 새겨지자 그다음으로 붕새의 여의주에서 마력을 추출하는 일에 돌입했다.


 “여의주에 담긴 마력이 워낙 커서 흑마법서를 만들고 나서도 마력이 좀 남네요.”


 컴퓨터 모니터를 보던 이태민이 말했다.


 “남은 걸로 다른 책을 만들 수도 있겠군요.”


 혜성의 말에 박준식이 손뼉을 한 번 치더니 말했다.


 “어쨌든 정말 다행이에요. 이제 우리 지점의 계약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우리가 책을 만들었는지 아닌지를 본사에서 어떻게 알죠?”


 “계약 기간 마지막 날에 본사 직원이 직접 지점으로 와서 상황을 확인합니다.”


 이태민이 대답했다.


 “아하, 그런 식이군요. 흑마법서가 그전까지는 완성되겠죠?”


 “약간 아슬아슬하긴 한데 그럭저럭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이 응접실에서 그런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가게 밖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혜성이 전화를 받았다.


 “네, 불사신 서점 서울 지점입니다.”


 상대방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혜성 사장님 계신가요?”


 “네, 제가 김혜성입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젊은 남자 목소리였다.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중요한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 사장님과 만나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어떤 일인가요?”


 “만나서 직접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김지훈과 관련된 일입니다.”


 “김지훈이요? 노예해방전선의 지도자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 사람과 관련해서 제가 사장님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혜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만나서 얘기하시죠.”


 “오늘 시간 되시나요? 제가 지금 마침 불사신 서점 근처에 있는 카페에 있거든요.”


 “아, 양천구에 계세요?”


 “네.”


 남자는 서점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카페의 이름을 댔다. 혜성은 지금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에요?”


 박준식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김지훈에 대해서 저한테 알려줄 게 있다고 하네요.”


 “김지훈?”


 이태민이 말했다.


 “조심하세요.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제국이 무너지긴 했지만 아직도 사장님을 노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경호원들과 함께 가시죠.”


 “그럼 되겠네요. 어차피 오늘은 할 일도 없으니까 가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려고요. 갔다 오겠습니다.”


 혜성은 경호원들을 데리고 서점 밖으로 나왔다. 카페는 서점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평일 낮이라 카페 안은 한적했다. 혜성이 카페에 들어가자 구석에 앉아 있던 왜소한 체구의 젊은 도깨비 남자가 일어났다.


 “김혜성 사장님이시죠?”


 그가 혜성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혜성은 그와 악수를 했다. 남자는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였고 안색이 다소 창백했다. 혜성은 한눈에 보기에도 그가 건강이 좋지 않다고 느꼈다.


 그들은 커피를 주문하고 남자가 앉아 있던 구석 자리에 앉았다. 경호원들은 그들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앉았다.


 “저는 강민수라고 합니다. 사장님을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남자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혜성은 어색하게 웃었다.


 “김지훈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는데......”


 강민수는 불안한 표정으로 잠시 침묵했다. 그는 뭔가를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혜성은 그가 입을 열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김지훈이랑 관련된 일이긴 합니다만, 사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예요. 사실 제가 진짜 하려던 이야기는 김지훈에 대한 게 아닙니다. 물론 그 친구와 관련이 있긴 해요. 다만 그를 언급하면 사장님이 관심을 보이실 것 같아서 말했던 겁니다.”


 “어떤 일이죠?


 강민수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사실을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어요. 그냥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평생 비밀로 간직한 채 죽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이었어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도대체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숨긴 채 오랫동안 침묵했습니다. 하지만 더는 침묵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말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제 딴에는 용기를 내서 사장님에게 찾아온 겁니다.”


 “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하고 관계가 있는 일인가 보군요?”


 “그건 아닙니다.”


 강민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는 꼭 사장님을 만나고 싶었고 사장님에게 털어놓고 싶었어요. 사장님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사장님을 제외하면 달리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왜......”


 “왜냐하면,”


 강민수는 떨리는 눈빛으로 혜성을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사장님께서는 도깨비 여왕의 약혼자이고, 연방의 도깨비 강제노동을 반대했고, 무엇보다도 용산의 대학살에서 수많은 사람을 구한 영웅이니까요. 그래서 사장님이라면 이 사실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요. 저는 아무 힘도 없고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제 사장님에게 이 일을 맡기겠습니다. 그래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혜성은 들을수록 아리송해졌다.


 “그래서 말씀하시려는 게 어떤 것이죠?”


 강민수는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저는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오랜 세월 두려움에 떨며 숨어 지냈습니다. 저는 김지훈의 최후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진짜요?”


 혜성은 깜짝 놀랐다.


 “네. 저는 지훈이와 함께 노예로 일했습니다. 저는 지훈이와 친해졌고, 그가 죽을 때 옆에서 임종을 지켰죠.”


 “김지훈과 함께 노예로 일했다는 말씀은 매자의 유물 발굴 현장에서 노예로 계셨다는 말씀인가요?”


 “아닙니다. 그건 그 후의 일입니다. 김지훈이 노예해방전선의 지도자로 활동하다가 납치된 후의 일입니다.”


 “누가 김지훈을 납치했는데요? 제국인가요?”


 “연방입니다.”


 “무슨 연방을 말씀하시는 건지?”


 “지금의 연방 정부요. 대한민국 정부 말입니다.”


 혜성은 눈을 깜박였다.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한국 정부는 독립 전이나 지금이나 노예제에 반대하는 입장이잖습니까.”


 “겉으로만 그럴 뿐입니다. 연방은 비밀리에 대규모로 노예들을 부리고 있습니다.”


 강민수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태백산맥 지하에는 거대한 지하도시가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식민지 이전, 아주 오래전부터 지어놓은 것이죠. 수십만 명의 도깨비 노예들이 그곳에 갇힌 채로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습니다. 전부 도깨비로만 이루어진 노예들이죠. 전 김지훈과 함께 그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김지훈은 노예해방전선의 지도자로 활동하던 과정에서 연방 정부와 몇 번 교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식민지 시절에도 연방 정부는 노예제를 반대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훈이가 노예들을 해방시키던 중 연방 정부의 비밀에 대한 단서를 잡게 된 겁니다. 지훈이는 연방에게 지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 물었는데, 연방은 지훈이가 더 눈치채고 그 사실을 폭로하기 전에 지훈이를 납치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태백산맥 탄광의 노예로 만들어버렸죠.


 저는 지훈이보다 먼저 그곳에 끌려가서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새로 들어온 지훈이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린 빨리 친해졌어요. 처음에는 지훈이가 밖에서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지훈이와 친해진 뒤 지훈이가 자신은 밖에서 노예를 해방시키는 단체를 이끌고 있었는데, 연방 정부의 배신으로 이곳에 끌려왔다고 말해줬죠.


 지훈이는 그곳에서 저와 함께 몇 년 동안 일하다가 병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탄광에서는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많아요. 지훈이도 같은 병에 걸려서 죽었죠. 저는 그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지훈이가 죽고 몇 달이 지났을 무렵 탄광에서 어떤 시설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 복구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작은 구멍을 하나 발견했는데, 감독관 몰래 그 구멍을 기어나가자 밖으로 향하는 통로가 나와서 홀로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숨죽인 채 밖에서 살아갔죠. 저는 몇 년 동안 연방이 제가 탈출한 것을 알아내고 저를 잡으러 올까 봐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광복이 왔고, 저는 제국이 무너지고 노예제가 폐지된 후에는 혹시 그곳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연방은 지상에서는 노예제를 금지했지만 지하에서는 여전히 강제노동시설을 유지하고 있어요.”


 혜성은 강민수가 말을 마친 후에도 잠시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가까스로 물었다.


 “그게 사실인가요?”


 “네. 전부 제가 겪은 일입니다.”


 혜성은 눈앞의 남자가 미친 사람이 아닌가 싶어서 가만히 쳐다봤다.


 “제가 미친놈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그건 아닙니다만...... 선생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그 탄광은 무슨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이죠?”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저희는 그저 어떤 거대한 광물이나 뼈 같은 것에서 조각을 채취하는 일을 하라고 강요당했습니다.”


 “그곳에 수십만 명의 노예가 갇혀 있다고요?”


 “네. 전부 도깨비들로만 구성된 노예들입니다.”


 “근데 그 사실을 지금까지 아무도 모른다고요?”


 “지상의 사람들은 전혀 모르죠.”


 “그리고 선생님만 그곳에서 운 좋게 탈출하신 것이고요?”


 “그렇습니다.”


 “혹시 선생님이 말씀하신 이야기의 증거를 보여주실 수 있나요?”


 “제가 지금 갖고 있는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직접 보여드릴 수는 있을 것 같네요.”


 “어떻게요?”


 “제가 탈출한 굴 안으로 기어들어가서 탄광의 모습을 사장님께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시는 겁니다. 제가 며칠 전에 태백산에 가서 그 굴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확인했는데,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아직 그 굴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는 거죠.”


 혜성은 한동안 눈앞의 남자를 응시했다. 그는 이 사람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 사람은 그냥 장난을 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세상에 흔한 거짓말쟁이. 하지만 강민수는 지치고 불안하고, 무엇보다도 간절해 보였다. 혜성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그 굴이 있는 곳까지 절 데려가 주세요. 제가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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