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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Mar 03. 2024

69화. 탄광 (2)

<흑마법서> 소설 연재

 혜성과 강민수, 그리고 세 경호원은 곧장 차를 타고 강원도 태백시로 향했다. 그들은 강민수가 이끄는 대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로를 벗어나서 한참 동안 산을 오른 끝에 그들은 나무가 울창한 곳에 도달했다. 강민수는 커다란 바위 옆에 있는 작은 동굴을 가리켰다.


 “이곳입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있어요.”


 동굴은 허리를 숙여야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크기였다. 옆에 있던 경호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공자님,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요. 저만 들어갈 테니까 여러분은 여기서 기다려주시겠어요?”


 “저희도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굴이 좁아서 다 같이 들어가긴 힘들어 보여요. 저랑 이 분만 들어갈게요.”


 혜성은 괜찮다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는 강민수에게 들어가자고 말했다.


 강민수는 미리 가져온 헤드 랜턴을 혜성에게 내밀었다. 혜성이 랜턴을 머리에 쓰자 강민수가 먼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혜성도 그를 따라 들어갔다.


 동굴은 아래로 계속 이어졌고 들어갈수록 좁아졌다. 허리를 숙인 채 계속 내려가다 보니 허리가 점점 아파졌다. 비좁고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혜성은 갑자기 제국인 폭도들에 의해 관에 갇혀 땅 속에 파묻혔던 때가 떠올라 숨이 막혔다. 혜성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두려움은 지워지지 않았다.


 “사장님? 괜찮으신가요?”


 앞장서서 걷던 강민수가 뒤돌아보며 물었다.


 “조금 답답해서 그래요. 괜찮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굴이 갈수록 좁아져서 그들은 허리를 굽힌 상태로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야 했다.


 굴 안으로 들어간 지 체감상 3, 40분은 지난 것 같았다. 앞장서서 걸어가던 강민수가 멈추더니 말했다.


 “죄송하지만 여기부터는 굴이 아주 좁아서 기어가야 합니다.”


 “아직 멀었나요?”


 “거의 다 왔습니다. 좀만 더 가면 나옵니다.”


 강민수의 말대로 굴이 갑자기 더 좁아졌다. 혜성은 강민수를 따라 엎드려서 기어가기 시작했다. 엎드린 상태로 아래로 내려가다 보니 얼굴로 피가 쏠렸다. 혜성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한참 동안 그렇게 기어가자 저 앞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강민수는 이마의 랜턴을 껐다. 혜성도 불을 끄고 강민수를 따라 계속 기어갔다.


 앞에 있던 빛은 가까이 갈수록 점점 커지다가 마침내 작은 구멍으로 드러났다. 먼저 구멍 밖으로 빠져나간 강민수는 뒤따라오던 혜성이 구멍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줬다.


 “여기서부터는 조용히 움직이셔야 합니다. 들키면 사장님도 붙잡혀서 노예가 되실 거예요.”


 강민수가 소곤거렸다.


 그곳은 천장이 높고 거대한 공간이었다. 갑자기 넓은 공간이 나오자 혜성은 당황스러웠다. 마치 지상으로 나온 것만 같았다. 강민수는 혜성을 이끌고 작은 언덕 위로 올라가서 엎드린 채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은 일종의 공사장 같은 모습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감독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공사장 아래의 커다란 굴 입구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옆의 굴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든 채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강민수의 말대로 인부들은 모두 도깨비 같았다. 도깨비들은 모두 똑같은 낡은 회색 옷차림이었다. 마치 죄수복과 비슷해 보였다.


 공사장의 높은 곳에서는 총을 든 감시자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 인부들은 곡괭이와 여러 가지 장비를 든 채 광물처럼 보이는 물질이 담긴 수레를 밀며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저 쪽이 노예들의 숙소예요.”


 강민수가 작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곳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저 사람들이 전부 노예란 말인가요? 합법적으로 고용된 광부가 아니고요?”


 “네. 전부 밖에서 끌려왔거나 여기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강민수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수레를 끌고 가던 인부 한 명이 땅에 쓰러졌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감독관이 달려와 인부를 채찍으로 후려쳤다. 하지만 인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감독관은 인부를 계속 때리다가 인부가 미동이 없자 무전기로 어딘가에 연락을 했다. 그러자 잠시 후 들것을 든 사람들이 와서 인부를 싣고 가버렸다.


 혜성은 그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강민수도 옆에서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지켜봤다.


 “이제 가야겠습니다. 여기 오래 있으면 위험해요.”


 두 사람은 다시 좁은 굴을 기어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더 오래 걸렸다. 동굴 밖으로 나온 혜성은 땅에 주저앉았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호원들이 그를 부축해서 몸에 묻은 흙을 털어주었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혜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강민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본 그 광경은.......”


 강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연방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강제노역장입니다.”     




 그들은 다시 차를 타고 서점으로 돌아왔다. 혜성은 강민수와 휴대폰 번호를 교환한 뒤 나중에 다시 연락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혜성은 서점에 들어가 자신이 본 광경을 박준식과 이태민에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두 직원들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이태민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연방이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죠?”


 박준식이 물었다.


 “그건 강민수 씨도 모른다고 했어요.”


 “지금까지 제국의 노예제를 그렇게 비난했으면서 자기들은 몰래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니! 사장님,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혜성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이태민이 말을 이었다.


 “연방 정부에게 탄광에 대해 물어보는 건 위험합니다. 연방은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냈다는 걸 알게 되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제 생각도 그래요. 비밀리에 거대 노예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니까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그리고 답해준다고 해도 진실을 알려주진 않겠죠. 이건 어때요? 일단 언론에게 알리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공론화하는 거죠. 세상이 이를 알게 되면 그때는 정부도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좋은 생각이에요.”


 이태민이 말했다. 하지만 박준식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과연 좋은 생각일까요? 우리가 그걸 언론에 제보했다는 걸 정부가 알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일단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는데 우리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겠지.”


 이태민의 말에 박준식은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 저는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솔직히 이 일이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죠?”


 혜성이 물었다.


 “강민수라는 사람은 이 진실을 자신이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장님한테 떠넘긴 겁니다. 어찌 보면 비겁한 거죠. 우린 그 탄광과 직접적인, 아니 간접적인 관련도 없잖아요. 그냥 그 사람은 심리적인 도움이 필요했던 거예요. 솔직히 사장님이 이 일을 해결할 필요는 없어요. 사장님은 어디까지나 마법사일 뿐이지, 사회 운동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일까지 해야 합니까.”


 “도대체 왜 그래? 뭐가 걱정이야?”


 이태민이 물었다.


 “난 연방 정부가 무서워.”


 박준식이 대답했다.


 “정부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어. 우리가 이 사실을 제보한다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일어날 거야. 그런 일이 일어나면, 정부는 자신들을 곤란에 빠트린 제보자를 색출하려 할 거야. 그렇게 해서 우리가 제보자라는 걸 알아낸다면, 그때는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난 그게 걱정돼서 그래.”


 “정부가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정부는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제국의 노예제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어. 하지만 뒤로는 비밀리에 거대 노예시설을 운영하고 있었지. 정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한 일도 할 거야.”


 “제보자의 신원을 보호하는 건 언론인의 기본이야. 우리가 제보했다는 걸 언론이 알리지 않으면 괜찮잖아.”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지. 언론이 그런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리고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접촉한 기자를 정부가 족친다면?”


 “정부가 기자를 고문이라도 할까 봐 그래?”


 “안 한다는 보장이 있어?”


 이태민은 고개를 저었다.


 “지나친 생각이야.”


 “지나친 건 사장님이 보고 온 광경 아니냐?”


 그렇게 말한 뒤 박준식은 생각에 잠겨 있는 혜성에게 말했다.


 “사장님, 조금이라도 걱정되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사장님은 지금까지 고생을 할 만큼 했어요. 또다시 또 다른 고생을 자처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강민수 씨에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보라고 하면 돼요. 그런다고 해도 아무도 비난하지 못할 겁니다.”


 “매려 여왕에게 도움을 구하면 어떨까?”


 이태민이 말했다.


 “그건 안 돼요.”


 혜성이 말했다.


 “이 문제를 언론이 아니라 매려가 공론화한다면 매려는 정부에게 큰 탄압을 받을 겁니다. 이런 문제는 언론이 공론화하는 게 맞아요.”


 “그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군요. 언론에 제보하고 정부에서 제보자를 색출하는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박준식은 그렇게 중얼거린 뒤 말을 이었다.


 “모르겠다. 그냥 사장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두세요. 진실을 알리는 건 사장님의 의무가 아니에요. 침묵하는 게 사장님의 죄는 절대 아니라고요.”


 혜성은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방관자도 가해자라고 그랬어요.”


 그는 고개를 들고 두 직원과 눈을 마주쳤다.


 “진실을 모른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침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제가 직접 언론에 제보하겠습니다. 이 사실이 공개되면 대중과 언론이 들고일어날 테고, 그렇게 되면 연방 정부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비밀리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제대로 밝힐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나아가 강제 노동을 없앨 수도 있겠죠. 제가 직접 제보하겠습니다.”     




 혜성은 다음날 대현일보의 최명준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명준 기자는 오랫동안 제국의 노예제에 대한 탐사보도를 해온 것으로 유명한 기자였다. 혜성은 이 사실을 어떤 언론사의 어떤 기자에게 제보할지 고민하다가 최 기자를 고르기로 했다. 최명준 기자는 불사신 서점 지구 지점의 사장이자 매려 여왕의 약혼자인 혜성이 직접 만나서 제보할 게 있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달려왔다.


 혜성은 최 기자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도록 강민수를 설득했다. 언론에 알린다는 말에 강민수는 두려워하는 듯했으나 혜성의 설득에 결국 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직접 만난 최명준 기자는 생각보다 젊은 도깨비 남성이었다. 혜성은 불사신 서점으로 두 사람을 불렀다. 강민수는 혜성이 보는 앞에서 긴장한 모습으로, 하지만 차분하게 기자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예상대로 최 기자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랐다. 혜성은 자신도 강민수와 함께 그 굴 안으로 들어가서 탄광의 내부를 봤다고 덧붙였다.


 “저도 직접 가서 봐야겠습니다. 안내해 주실 수 있나요?”


 최 기자의 말에 강민수는 알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강원도로 떠나기 전에 혜성이 물었다.


 “취재를 하고 난 다음에는 기사를 내시는 거죠?”


 “네, 증거 사진과 영상도 찍은 다음에 기사를 낼 생각입니다.”


 두 사람이 강원도로 떠난 다음 날, 최 기자는 동굴 안으로 몇 번 더 들어가서 충분한 증거가 될 만큼 사진과 영상을 모아야겠다고 혜성에게 문자를 보냈다.     




 대현일보의 1면에 특종이 실린 것은 혜성이 최 기자를 만나고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대현일보는 1면과 여러 면을 할애해서 최 기자가 찍은 노예 시설의 사진을 실었다. 그리고 대현일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최 기자가 직접 촬영한 노예 시설의 내부를 담은 동영상도 여러 편 올라왔다.


 사진과 영상에는 노예 시설과 강제 노동의 모습이 자세히 담겨 있었다. 최명준 기자는 일주일 동안 시설 안을 몰래 돌아다니며 자세히 촬영을 한 모양이었다. 그는 수십만 명의 노예들이 지내는 열악한 시설과 그들이 채찍을 맞으며 광물을 캐고 가공을 하며 혹사당하는 모습, 그리고 부상자와 사망자들의 모습까지 먼 곳에서 확대해 촬영을 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찍은 것들이었다.


 기사는 이 모든 것이 연방이 오래전부터 비밀리에 운영해 온 대규모 노예 시설이라고 설명했으며, 그곳에서 탈출한 익명의 제보자, 즉 강민수의 증언도 자세하게 싣고 있었다.


 그날 아침 인터넷 기사를 본 혜성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큰 파장이 일겠군.”


 그는 중얼거렸다.


 “제발 잘 풀려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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