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편안하게 유럽 자동차 여행하기> 남유럽여행
▲ 세비야 왕립 알카사르(Real Alcázar de Sevilla) 중정(Patio) © Kalboz
그라나다(Granada) 알함브라(Alhambra)와 코르도바 모스크-대성당(Mezquita-Catedral de Córdoba) 여행을 마치고, 3시간 거리의 세비야(Sevilla)로 향한다. 우리의 스페인 여정은 주요 방문지 근처의 파라도르(Parador)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근교 여행을 이어 가는 방식이다. 세비야 도심 북동쪽 약 40분 거리에 카르모나 파라도르(Parador de Carmona)가 있지만, 오전 여정을 감안하여 도시 근교 호텔에 투숙하기로 한다.
몇 시간 거리를 달리는 동안 높고 낮은 다양한 산지(山地)와 광활한 평원, 변화무쌍한 날씨를 경험한다. 도로변에 예외 없이 올리브 농장과 함께 가축 목장이 자주 보인다. 이 지역은 축산이 주요 산업 중의 하나임을 알리는 듯, 드넓은 농장 옆에 거대한 황소 조형물이 자주 등장한다.
안달루시아(Andalusia) 남부 특히 세비야는, 전통 요리인 추레톤(Chuletón, 두툼한 스테이크)으로 유명한 곳이다. 추레톤은 붉은 갈색 털을 가진 풍미가 깊고 육즙이 풍부한 육용우(肉用牛) 레틴타(Retinta)로 만든다. 투우(鬪牛) 품종인 리디아(Lidia)는 고기의 독특한 풍미로 일부 고급 요리에 사용된다.
알폰소 13세 운하(Canal de Alfonso XIII) 서안(西岸)에 위치한 유로스타스 토레 세비야(Eurostars Torre Sevilla)는 안달루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37층, 해발 180.5 m)로써, 도시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파노라마 뷰를 제공한다.
출발할 때 눈부시던 햇빛은 지금 거센 바람과 빗줄기로 돌변한다. 저녁 7시가 지나는데 서쪽하늘 먹구름 아래 붉은 노을이 길게 띠를 두른다. 늦은 시각 잠시 멈춘 비바람, 검은 구름 아래 붉은 노을 그 틈새를 뚫고 상현달이 잠시 보이더니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이내 얼굴을 감춘다.
파라도르를 둘러싼 광야와 달리 알록달록 세비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성(古城)의 사나운 바람소리와 황량함을 불편하게 여기던 아내가, 아늑한 엘 두엔다(El Duende, 34층 위치)에서 바라보는 통유리밖 폭풍은 오히려 운치 있다고 한다. 그새 비구름이 사라진 밤하늘은 너그러운 품으로 화려한 도심 야경을 감싸고 있다.
간밤의 거친 비바람은 온데간데없고 오전 첫 여정을 축하하듯, 도심 안개바다는 고요히 햇살에 잠겨 있다.
'알카사르(Alcázar)”는 아랍어 “알카스르(Al-qasr, 요새 또는 궁전)”에서 유래했으며, 스페인어로 성(城)을 의미한다. 이 궁전 단지는 무어인과 기독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무데하르(Mudéjar)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는데, 현재까지 사용 중인 가장 오래된 유럽 궁전 중 하나이며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알-안달루스의 초대 칼리프(Primer Califa de Al-Ándalus), 압드 알라흐만 3세 (Abd-ar-Rahman III)는 913년 로마 요새가 있던 이곳에 성곽 건설을 시작하였다. 1364년 카스티야의 페드로 1세(Pedro I de Castilla)가 새로운 궁전인 알카사르의 건설을 명했으며, 이후 후계자들이 궁전 건축을 계속해 오늘에 이른다(출처: https://sevillecityguide.com).
다양한 양식이 어우러진 중정(中庭), 정원, 홀(Hall)의 미로(迷路) 같은 구조 때문에 “조화의 미로(The Labyrinth of Harmony)”로 불리는 이곳은 “처녀들의 중정(Patio de las Vírgenes)”에 길쭉한 연못이 자리 잡고 있고, 주변에는 정원과 아치형 갤러리가 있어 접견실로 연결된다. 또한 “대사의 홀(Salón de Embajadores)”의 삼나무로 만든 웅장한 돔(Domo)과 무역 사무소(Casa de Contratación)가 유명하다.
대부분의 여행객이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evilla) 동쪽 건너편 사자의 문(Puerta del León)이라 불리는 메인 출입구로 입장하지만, 서쪽 정원 끝에도 출입구 하나가 또 있다. 관광명소 밀집지역이므로 사전 예약이 편리할 것이다. 4월~9월은 오전 9시 30분~오후 7시, 10월~3월은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성인 기준 일반입장권은 €15.50(약 2만 6천원)이며 왕실(Royal Room) 추가 입장료는 €5.50(약 9천원)이다.
사자의 문(Puerta del León)에 들어서면 사자의 중정(Patio del León)이 나오고, 그다음 정면의 페드로 왕궁(Palacio del Rey Don Pedro)과 우측에 무역 사무소(Casa de Contratación)로 둘러싸인 몬테리아 중정(Patio de Montería)이 있다.
페드로 왕궁은 무데하르 궁전(Palacio Mudéjar)으로도 불리는데 1356년부터 1366년 사이에 페드로 1세(Pedro I)의 주도로 지어졌으며(출처: https://www.alcazarsevilla.info), 내부는 아름다운 타일과 무데하르 양식의 화려한 천장으로 장식된 갤러리와 홀로 구성되어 있다.
우측의 무역 사무소는 1503년 설립 이후 스페인 해상 무역 및 운송을 관리하고 규제하던 곳이다(출처: https://www.alcazarsevilla.info). 이곳은 페르난도(Fernando) 왕과 이사벨(Isabel) 여왕이 탐험가 콜럼버스(Colón)를 접견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대사의 홀(Salón de Embajadores)은 페드로 왕궁에서 가장 화려한 홀 중 하나이다. 4세기에 이슬람 건축 양식인 "쿠바(Qubba)" 양식의 돔이 얹힌 정사각형 홀이다. 왕좌의 방(Throne Room)으로 사용되었던 이곳은, 중요한 방문객들을 접견했던 홀이었다(출처: https://alcazarseville.com).
대사의 홀 사면(四面 ) 벽 위쪽은 석고, 아래쪽은 타일로 된 풍부하고 정교한 무데하르 양식의 세부 장식으로 덮여 있다. 벽의 정사각형 상단과 돔 원형 하단 연결 역시 정교한 장식의 8각형과 16각형 금색 별이다.
몬테리아 중정 왼쪽에 십자형 구조에서 유래한 십자가의 중정(Patio del Crucero)이 있다. 그 전면에 고딕 궁전(Palacio Gótico)이 있는데, 3세기 후반 알폰소 10세(Alfonso X)에 의해 건축되었다(출처: https://alcazarseville.com). 볼트 홀(Sala de las Bóvedas, Gran Salon)의 화려한 타일 장식과 살론 데 로스 태피스트리 홀(Salon de los Tapices)의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있다. 이 작품은 1535년 카를 5세(Carlos V)가 튀니지(Túnez)를 정복한 승리를 묘사하기 위해 제작된 12점의 연작(聯作) 중 일부이다.
고딕 궁전에는 네 개의 홀이 있는데, 그중 두 개는 중정과 평행으로 배치되어 있고, 나머지 수직으로 배치된 홀 중 하나가 예배당(La Capilla)이다. 예배당 내부는 기둥으로 지지되는 골조 천장으로 덮여 있고, 벽은 아우구스타의 크리스토퍼(Cristóbal de Augusta)가 제작한(출처: https://explicartesevilla.blogspot.com) 아름다운 타일로 덮여 있으며, 황제와 황후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볼트 홀과 댄스의 정원(Jardin de la Danza) 사이에 “파딜라의 도냐 마리아 목욕탕(Baños de Doña María de Padilla)”이 있다. 그녀는 귀족 여성이자 국왕 페드로 1세의 정부(情婦)였으며, 왕의 유언에 따라 그녀를 자신의 왕비이자 아내로 묘사했다.
성벽 정원(Muralla Jardin)은 한때 알카사르 단지를 보호했던 중세 방어용 성벽과 궁전 정원 일부를 둘러싸고 있으며, 수세기에 걸쳐 건설되고 확장된 이 성벽은 이슬람과 기독교 군사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주요 정원 구역으로, 무어 양식의 디자인과 그늘진 산책로가 있는 가장 오래된 정원 중 하나인 다마스 정원(Jardín de las Damas)과 생울타리로 된 미로 정원(Jardín del Laberinto) 등이 있다.
정원은 이슬람,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반영하며 궁전의 웅장함과 대비되는 평온함을 선사한다. 즉 이곳은 알카사르의 요새이자 낙원으로써 역할, 이슬람의 천국 정원(Jannah) 개념과 이후 기독교의 이상적인 왕실 여가를 구현하고 있다.
시대와 종교와 공간을 넘나들며,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문화적 사치를 한껏 누린 여정을 마무리한다. 여유로운 도보여행을 할 수 있도록 빛나는 햇살을 지켜준 하늘, 오늘의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