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마지막 문장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
- 이제 바다가 잠잠해지면 육지에서 배와 사람들이 오겠지.
아침 일찍부터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구겨 신은 운동화를 질질 끌고 나온 몇 명의 군인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들은 나와 길게는 1년, 짧게는 몇 일 까지도 함께 살았던 내 또래의 전국에서 모인 청춘들이었다. 시동을 몇 십 분이나 켜 두었지만 아직 차가운 버스 안에는 나와 내 동기 2명이 타고 있었고, 창문 밖에서 우리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춥다고 빨리 가라며 재촉하던 이는 친구와 동반입대를 한 승훈. 승훈은 당시 21살로 나보다 한 살 어렸다. 춘천에서 온 그는 닭갈비보다 손흥민의 고향이 춘천임을 더 자랑하고 다녔으며 그와 동반입대를 한 희태는 그런 그를 항상 바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부럽냐? 그냥 부럽다고 해 인마~" 나의 마지막 장난이었다.
마침 야간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들이 눈에 띄었다. "아직 가면 안 됩니다!" 나에게 분대장 견장을 물려받은 원석의 작은 외침이었다. 원석은 부리나케 총기를 집어넣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바로 우리에게 달려왔다. "근무 나가는 거야 형?" 누가 봐도 전역하는 우리에게 일부러 장난을 치는 듯 보였다. 나와 무려 9개월이나 차이 나던 까마득한 후임이 바로 원석이다. 나에게 있어 원석은 일명 '짬찌'라고 불리우는 신병이었다. 그는 매우 소심한 성격이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또한 이상하게도 그는 유독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근무면 근무, 작업이면 작업, 훈련이면 훈련, 실상황이면 실상황. GOP에서 하는 모든 일을 대부분 함께했다. "원석아, 근데 형 아직도 더 있어야 돼?". 원석이 말했다 "아니야 이제 슬슬 가"
원석을 다시 본 건 그의 부친 장례식장이었다.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검은색 정장이 없을 때라 아직 군인이던 원석에게 위로가 될까 오랜만에 다시 군복을 꺼내 입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