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시체로 누워있다는 건 무슨 말일까? 축축하게 젖어 몸이 불어 터지기 직전인 사람이 하는 말 일수도, 아니면 물이 다 빠진 우물에 들어가 시체처럼 누워 있는 사람이 하는 말 일수도 있다. 실제로 나도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있는 걸 즐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만 깜빡이며 주변을 관찰한다. 방 천장에 언제 저런 얼룩이 생겼지? 옷이 왜 저렇게 걸려있지? 립밤이 저기 있었구나. 그야말로 생각하는 시체다. 주로 눈앞이 깜깜해질 때 한다. 사람을 만나기 힘들거나 모든 것에 싫증이 날 때를 말한다.
시체가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매우 흥미로운 시작이다. 당장 책장을 넘기며 어쩌다 시체가 되어서 누워있는지, 어쩌다 우물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진다. 책의 표지도 심리를 자극한다. 이상한 모자를 쓴 여인이 책을 보는 건지, 글을 쓰는 건지 아니면 혹시 우물의 시체를 보며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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