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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 운 Mar 29. 2024

첫눈에 반해 버렸다.

책 <캐치-22> - 조지프 헬러


- 첫눈에 반해 버렸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고 어떻게 첫눈에 반하나 싶겠지만, 이것은 실제로 가능한 일이다. 아주 오래전, 중학교 3학년 때 일이었다. 친한 친구들과 반 배정이 맞지 않아 혼자 교실로 들어갔다. 친구 한 명 없이 맨 뒷자리에 앉아 졸고 있는데 창문에서 달콤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따스한 바람에 나도 모르게 바람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창문 바로 옆 자리에 앉은 중단발의 여자애를 보고 사람은 첫눈에 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히나 덧붙이자면 첫눈에 반한다는 건 길가다 만원짜리를 줍는 행운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내가 이 매거진을 써야겠다고 느끼게 해 준 <소설의 첫 문장> 책에서도 첫눈에 반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첫눈에 반하는 것은 물론 서로 얼굴 한 번 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끌릴 수 있겠다 싶어졌다. 죽음을 연구하는 내과 의사가 인터뷰의 주인공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에너지의 파장이 같은 영혼들끼리 자연스레 모이게 된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성격이며 습관이 다른 사람끼리도 얼마든지 뒤섞여 살게 되지만 죽어서는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말 같지도 않은 얘기를 그것도 의사라는 사람이 지껄이고 있다고 혀를 끌끌 찼을 텐데, 어쩐 일인지 그날 나는 불에 덴 듯 그 인터뷰 기사를 되풀이 읽었다. 갑자기 죽는 일이 하나도 겁나지 않을뿐더러, 좀 과장하자면 죽음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죽고 난 뒤에 같이할 인연을, 그러니까 자신과 에너지의 파장이 같은 사람을, 살아 있는 동안에 알아보는 일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졌다. 첫눈에 반하는 것,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 (김정선, 소설의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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