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 특별한 순서 없이, 기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운동장에 모든 아이들이 모여 달리기 시합을 한 날의 기억과, 1등 스탬프가 손등에 찍힌 채 엄마가 싸 온 김밥을 신나게 주워 먹던, 그런 흙먼지 날리는 기억들 모두 나에게 있었던 일이다.
기억이란 기억하는 대로 기억나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도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게 나도 모른 채 허구와 사실이 공존하는 기억 속에서 순서를 찾는 일이란 얼마나 쓸모없는 일인가. 책에서도 말하듯이, 기억은 특별함 없이 그저 떠오른다.
벌써 3년도 더 된 일이다. 형이 뇌종양에 걸려 중환자실에 있을 때였다. 코로나가 창궐하고 세상이 갑작스레 변하고 있었다. 세상의 변화에 우리 가족은 적응하지 못했다. 장남인 형이 중환자실에서 기억도 못하는 채로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면회를 간 건 형이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다. 당시에는 하루 30분, 2명씩 소중한 면회 시간이 주어졌다. 물론 들어가기 전 코로나 검사도 했어야 했다.
형은 기억과 하반신을 담당하는 뇌 쪽에 악성 종양이 생겨 걷지도, 기억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모든 기억을 잊어버린 게 아니다. 형은 과거로 돌아갔다. 형은 자신이 왜 중환자실에 있는지, 왜 신생아들이 사용하는 손싸개를 자기 손에 덮어놨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형 앞에서 울지 않으려 한 달을 준비했다. 형 앞에서 우는 건 의사가 허락하지 않았다. 뇌는 미지의 영역이다. 우리가 형 앞에서 눈물을 보일 때마다, 형은 점점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실제로 몸이 더 안 좋아질 거라고, 심리적인 요소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 달이나 지나고, 나는 웃는 얼굴로 형을 만났다.
그때 우리 형은 군인이었다. 전역한 지 이미 한참 된 사람이지만, 형은 나에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잘 지내냐? 형 중대 달리기 대회 1등 해서 휴가 받았으니까 집 가서 봐"
형이 앉아있는 침대 앞 간이 테이블에는 아빠가 사온 김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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