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고 있습니다.
퇴사 후 두 달하고 보름이 지났다. 호기롭게 퇴사를 선언하였으나 현실적인 문제 앞에 위축됨은 어쩔 수가 없다. 일단 몇 달을 작업만 하면서 버될 수 있을 총알을 모아야 했다. 동생에게 주변에 편집/그래픽 디자인 일이 있으면 소개를 해달라고 했고, 운 좋게도 몇몇 일을 받을 수 있었다. 언니가 돼서 동생에게 좋은 일을 소개는 못해줄 망정 얻어다가 하고 있으니 모양새가 빠지는 기분도 없잖아 있지만 뭐 그런 건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두 달이 훌쩍 지났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니 그간 멈춰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쓰임 없이 정지되었던 것들에 다시 숨을 넣어야 한다. 여기가 항상 내가 힘들어하는 포인트이다.
'전환'__ 익숙해진 루틴을 바꾸는 것, 집중하던 일을 정리하고 빠져나오는 것. 나는 이것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
내가 다른 일을 하는 사이 저만큼 가버렸다. 누가? 무엇이? 모르겠다. 따라가야 할 거리가 더 멀어진 것 같은데 누구와 경쟁하고 있는 건지는 모른다. 자신과의 싸움이라... 경쟁의 대상이 '나'라고 한다면 너무 끝이 안 날 것 같아서 더 괴롭지 않은가.
그렇기에 바빠도 어떻게든 꾸준한 루틴을 끌고 가고 싶은데 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멀티플레이 점수는 꽝이다. 참 요즘 세상에 안 맞는 인간이구나 싶다.
혹시나 뒤처질까 잠시 SNS를 들여다보면 넘쳐나는 자기 계발 짤들. 어느 순간 약간의 혐오가 온다. 알고리즘에 대한 혐오인지, 넘쳐나는 정보에 대한 거부감인지 모르겠다. 기다려주지 않고 속절없이 흐르고 있는 시간과 세상을 원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진행 중이던 작업이 멈췄다. 주문한 실을 정리도 못하고 있다. 편하게 써보자 하고 시작한 글이 숙제가 되고 2주일을 쉬었더니 브런치스토리에서 알림이 오기 시작한다. 글을 쉬지 말라고.
'잠시만... 난 지금 쉬고 있지 않아......' 하는 변명이 머릿속에 스쳐간다.
약간의 극단성을 더해 표현하자면 '알람', '루틴', '리추얼'의 노예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전환' 앞에 어김없이 이런 기분이 밀려오면,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뱉는다. 예의를 갖춰 생각한다.
'괜찮다. 수고했어. 누가 몰라줘도 나는 안다. 열심히 했어.'
'그럼 뭐부터 시작해야 하지?'
'가장 품이 안 드는 것부터 해.'
그렇게 나는 또 0부터 좁은 걸음을 내디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