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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키코모리 K선생 Jun 02. 2024

끝 : 아르바이트를 했다 (3/3)

동굴 속 이야기 스물둘

10년 만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루에 10만 원이 넘는 거금이 손에 들어오자 자기 효능감이 솟아올랐다. 당초엔 딱 하루만 일을 하려고 했는데 2주간 연속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출근하게 되었다.


공장 일일 아르바이트란 것이 매일 출근할 수 있을 만큼 손쉬운 아르바이트는 아니었다. 튼튼한 몸과 일머리가 있어야 꾸준히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난 튼튼한 몸도 없고 요령도 없다. 허리가 아팠고 무릎이 삐걱거렸고 작업속도는 느렸다. 몸에 여기저기 멍이 생겼다.

공장의 거북이 아르바이트생입니다


아르바이트 첫날. 나와 같이 일하신 분은 작업량에 비해 일당이 낮다며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낫겠다는 말씀을 하시고 그 이후로 나오지 않으셨다.


난 그만두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만둘 수 없었다. 오랜만에 정상적인 '일하는 사회인'으로 복귀했는데 하루 일하고 그만두는 것은 내 용기를 꺾는 행동인 것 같았다. 게다가 다른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는 것이 여전히 조금은 두렵다. 그래서 며칠이나 버틸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는데 까지 해보자는 생각을 했고 하루하루 계속 출근을 했다.


결과적으로 공장에서 2주 이상 개근한 아르바이트생은 나 하나뿐이었다.

날 칭찬하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었다. 언젠간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처음엔 일이 너무도 힘이 들었다. 매일이 인내와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2주가 지나자 점차 요령이 생겼고 몸에도 힘이 붙었다. 일이 쉬워졌다. 그리고 알바 첫날 한다는 감동에 벅차올랐던 마음은 천천히 식어갔다. 슬슬 일을 하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지 않고 더 큰돈을 바라던 참이었다.

고작 2주 사이에 이렇게나 교만해질 수가 있나?


갖가지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더 많은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커리어 전환을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할까?
투잡을 해볼까?


그리고 아르바이트 3주 차에 들어섰다. 몇 달 전에 가족과 잡아둔 약속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루 쉬게 되었다. 내 예정과 결심을 무너뜨리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다. 다음 날 아르바이트 인원이 꽉 차서 쉬게 된 것이다.  다음 날도 일이 없어서 쉬게 되었다. 3일간 내리 일을 하지 않고 쉬게 되었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퇴보하는 기분이다. 큰일이다.


그리고 4일 차에 마침내 다시 일을 했다. 아르바이트 첫날 일하던 기쁨이 다시금 생각났다.


3일간의 롤러코스터로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지금의 몸상태는 완벽하지 않다.

후퇴하기 싫다는 강박감에 무리하고 있었다.

일상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 위해선 주기적인 변화와 자극이 필요하다

감정을 잊지 않고 되새기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쉬는 시간을 감사히 받아들여야겠다

꾸준히 정진하고 머릿속으로 연구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야겠다

올해 몇 번이나 큰 사고를 당할뻔했다. 일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죽음은 언제 올지 모르겠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죽음에서 눈 돌리고 당장의 행복과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한다면 후회를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난 교통비와 커피값을 제외하면 돈을 쓰질 않는 인간이다.

부모님 살펴드릴 정도를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벌어두면 되겠다.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면 내가 추구할 것은 기쁨, 보람이 아닐까?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무리하기보다 건강을 관리하며 하루하루 기쁘게 살아야겠다.

죽을병에 걸리면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게 아닐까?




어제 도서관에서 책을 만났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2017>. 연초와 어제 전 직장 동료들에게서 커리어 전환으로 들었던 조언이 있다. 오늘 모임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그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어우러져 한 가지 깨달았다.  


"4-5년, 여차하면 10-40년 차근차근 나아가도 되는 게 아닐까?"

너무 늦은 때란 없구나. 조급하지 말자.


히키코모리일 때는 직장/연봉과 나를 동일시 여겼고 그것을 상실한 것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히키코모리에서 벗어나면서는 빨리 많이 벌어둬야 한다는 생각이 날 서두르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돈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면서 지난주까지 난 혼란 속에 있었다.


돈의 압박과 거리를 둔다고 생각하니까 하고 싶은 일들이 명확해졌다. 수입의 크기가 기준이 되지 않는다면 난 자유다. 날 괴롭히던 고민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마음에 태양이 떠오릅니다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이 바빠졌다. 할 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10년 만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자유와 소망을 얻었다.

지난주까지의 날 돌아봅니다. 환경은 변하지 않았는데 모든 게 달라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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