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혼자 남은 아버지

암만 해도 그 맛이 안나

by 빛해랑

오늘도 이별할 준비를 한다. 이별하는 연습을 날마다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별은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적응이 안 되는 것인가 보다.


아버지가 혼자 남았다. 엄마를 보낸 후 식사했느냐는 사소한 안부에도 울컥 올라오는 슬픔에 목울대를 꾹꾹 누른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괴롭다. 호박 된장국만 봐도 아내를 보는 듯하는 눈길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특히 엄마가 자주 해주던 음식에서 힘들어한다. 어떨 땐 당신이 직접 흉내를 내어 만들기도 한다. "내가 추어탕을 끊여봤는데 암만 해봐도 네 엄마가 해주던 맛이 안나. 딸아 다음에 내려오거든 한번 끊여 볼 테야?" 멋쩍어하며 애먼 헛웃음만 연발한다. 엄마가 그립고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만의 표현방법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15년을 홀로 살았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엄마를 그리워했다. 속마음을 일일이 표현 못하는 사람이지만 "무엇을 먹어도 그 맛이 안나" 엄마의 음식을 그리워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엄마는 평생 동안 화장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의 주름진 얼굴과 거친 손은 싸구려 로션이 다였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이었을 것이다. 무슨 일인지 언니가 립스틱을 골라 건네주니 순순히 받는다. "야야 쥐 잡아먹은 입 같다!" 빨갛게 칠한 입술을 내밀어 보이며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예전에는 질색을 했었는데.... 평소에는 돈 아깝다며 옷도 화장품도 못 사게 하더니 새 옷을 사주니 좋아했다. 립스틱과 새 옷은 단 한 번도 엄마 것이 되어 보지 못한 채 삼우제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너무 일찍 갔어. 너무 고생만 하다 갔어. 자네는 지지리 복도 없는 사람이여."라는 말로 그리움을 표현하는 아버지. 그 말이 내게는 " 미안하이! 내가 너무 속을 썩였어! 젊은 날엔 술로 힘들게 했고, 이제 늙어서 고생도 끝나고 살아볼 만하다 싶으니 가버렸네 정말 미안하네."속죄의 말처럼 들렸다. 먼저 떠난 엄마도, 혼자 남은 아버지도 불쌍하다.


"아버지 뭐 드시고 싶으세요?"

"없어 아무것도 없어. 시골은 철철이 나는 게 반찬인데 너희들이나 잘 챙겨 먹어라"

"그러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것 말씀해 보세요. 밑반찬은 아직 있죠?"

"필요한 것은 다 있어. 입맛도 없고 대충 밥 한술 물 말아서 넘기면 족하다. 이리 살다 너희 엄마 따라가야지"


결혼 전에는 반찬 심부름을 많이 다녔다. 다행히 딸들이 많아서 돌아가며 아버지를 챙겼다. 반찬을 싸들고 시골집을 가면 바쁜데 왜 왔냐 면서도 좋은 표정을 못 감춘다. 청소도 해주고, 빨래도 돌려놓고 이불도 햇볕에 말리는 등 언니들의 전달사항을 착실히 이행하고 돌아오곤 했다. 대충 넘긴다는 말과 엄마 따라 가야제가 듣기 싫었다. 돌이켜 보면 채워지지 않는 엄마의 빈자리가 못내 서러워 투정을 한 게 아니었을까. 살뜰하게 챙긴다 한들 옆에 있던 부인만 못했을 테니.


아버지가 그나마 건강을 유지 한건 오십이 넘어 술로 망가진 위를 수술하면 서다. 술과 담배를 끊은 덕분이기도 하다. 당신이 경험해서인지 틈만 나면 아들 둘에게 술 담배를 끊어라 노래를 불렀다. 엄마의 기일 때마다 우는 아버지 그 모습에 같이 따라 우는 우리까지 참으로 긴 세월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아보니 혼자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알아간다. 배우자란 그런 것이다. 수 없이 많은 세월을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면서

또 한 사람의 나를 보듯 마주하는 사람이다. 사랑, 미움, 원망, 연민. 단어들의 표현이 부족한 '부부'라는 이름이다. 오죽하면 전우애라는 말도 붙여졌을까.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배우자다. 미울 땐 뒤통수도 보기 싫다가도 지쳐 보이는 어깨를 보면 한없이 다정하고 싶어지는 존재다. 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남편에게 잘해야지 마음먹게 된다. 아버지만큼 아내를 그리워해 줄지는 완벽한 물음표지만.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