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무겁고 깨질 듯 아프구나!" "아버지 병원에 한번 다녀오세요."
통화 이틀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암만 해도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단다" "네에~? 어디가 얼마나 안 좋길래. 서울로 오셔야겠어요."
그날 아버지는 서울까지 택시를 타고 왔다. 엄마가 돌아가셨던 고대 병원에서 혈액 암 진단을 받았다. 그 와중에도 택시비가 비싸다고 내내 택시비 타령을 하던 아버지였다.
3년을 키웠던 어미 소가 새끼 소를 낳았고, 그 어린 소가 어미가 될 때까지 키웠는데 새 주인을 찾아갔다. 아버지 심정이 어땠을까. 사료 한번 먹이지 않고 키웠다는 애정이 남다른 소였다. 여물과 쇠 죽으로만 먹여 키워서 윤기가 난다는 소는 아버지의 자부심이었다. "우리 소는 누가 가져갔냐?"가 전부였다. 옆에 없는 자식보다 아침저녁으로 아버지의 말 벗이자 의지가 되었던 소를 주인도 모르게 잃게 될 줄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독한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먹어야 한다는 자식들의 걱정을 고마워하던 아버지였다. 식사를 통 못하는 것 같아서 한 번은 무작정 살아있는 장어를 시장에서 샀다. 손질된 장어보다 살아있는 생물이 좋을 것 같다는 겁 없는 생각이었다. 장어들이 튀어나와 부엌 여기저기 펄떡 댔다. 소리를 지르며 얼마간을 울었는지 모른다. 도와줄 사람도 없다. 병원에서 기다릴 아버지를 생각하니 포기할 수도 없었다. 꿈틀대는 장어를 손으로 잡으며 미끄러운 감촉에 온몸을 떨었다. 넣어도 넣어도 튀어나온다. 대성통곡을 하며 장어탕을 끊였다. 아버지 때문이었는지 장어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찌나 힘을 주어 뚜껑을 잡고 울었는지 다음날 까지도 팔이 아프고 눈이 퉁퉁 부었다.
장어를 먹어 본 적 없었던 내가 맛있게 했을 리가 없었다. "맛이 없어도 기운 차려야 하니 드세요" "아니다. 잘 끊였다. 먹을 만하다." 하지만 숟가락이 몇 번 가지 않는다. 노력에 비해 보잘것없는 음식이 돼버렸다.
병원에 있는 동안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도 않는다. 마치 당신 잘못이기라도 한 듯 오히려 미안해했다. 몸도 마음도 이미 약해진 아버지다. 건강한 자식들이 고생 좀 하면 어떤가 말이다.
"아버지 드시고 싶은 거 없어요?"
" 없다. 내 걱정 말고 너희들이나 잘 챙겨 묵고 다녀라"
8개월을 입원해 있는 동안 먹고 싶다는 것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막내야 집 서랍에 보면 돈 넣어둔 것 있다. 내일 올 때 고구마 좀 쪄 오너라." 그때 알았어야 했다. 내일까지 기다리지 말았어야 했다. 아버지는 다음날의 고구마를 드시지 못하고 전화한 그날 새벽에 눈을 감고 말았다. 고작 고구마라니. 많고 많은 음식 중에 왜 고구마였는지. 막내딸 돈 쓸까 봐 말하지 못한 건지. 진짜 고구마가 먹고 싶었던 건지 물어볼 수가 없다.
고구마를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하필이면 큰 아이가 좋아한다. 자주 사지만 나는 잘 먹지 못한다. 이제는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다. 부모 마음을 알았을 땐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끼고 사랑해 주던 아버지에게 표현하지 못한 마음은 전해주지 못한 고구마처럼 아프다. 오늘도 쿠팡에서 고구마가 왔다. 끝내 먹지 못한 아버지를 떠올리며 정성껏 쪄서 아버지에게 주듯 내 아이에게 먹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