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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빛나 Oct 20. 2024

16. 가을. 낙조

우와! 해가지고 있어!

구름에 걸린 해가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다. 서해 끝자락 바다 위에 붉은빛의 길이 만들어진다. 마치 처음 낙조를 본 듯 숨을 멈추고 집중한다. 기어이 바다가 붉은 해를 삼킨다. 그제야 참았던 숨을 쉬며 여기저기 탄식의 소리가 들린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색채에 감탄과 아쉬움의 소리다.

"괜찮아 내일도 볼 수 있어" 아이를 달래는 젊은 아빠의 소리에 아이보다 내가 더 아쉬움을 달랬다.     

늦잠이 달콤했다. 간밤에 휴일을 믿고 늦게 잠든 탓에 쉬이 잠이 깨지 않았다. 남편은 벌써 준비를 마쳤는지 옷을 차려입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강아지까지 함께 하는 나들이라서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다. 정리 안 된 집안 꼬락서니가 신경이 쓰여 청소라도 하고 집을 나서고 싶지만 참는다. 청소한다고 설치면 남편이 늦는다며 짜증 낼 게 뻔하기 때문이다.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요즘 날씨다. 바쁘다는 핑계로 대화도 뜸한 요즘 불만이 쌓이기 전에 주말 나들이를 먼저 제안했었다. 아무리 바빠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집안에 평화가 찾아온다. 내 식구들은 유난히 여행을 좋아하고, 맛집을 좋아하는 것 같다. 집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지만 남편과 아이들에게 맞춰 줄 때가 많다. 즐거워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내 기쁨이다.     

아이들 어렸을 때 강화도 갯벌에 자주 갔었다. 좋았던 추억이 있어서인지 지금도 가끔 간다. "엄마! 대화에 집중 좀 해줘" 달리는 차 안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내게 딸이 하는 말이다. 틈틈이 읽고 있는 정우철 작가의 "내가 사랑한 화가들" 책을 읽고 후기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던 터라 대화가 아닌 다른 것에 집중했더니 그냥 넘어가 주지 않는다. 서둘러 발행하고 대명항에서 펄떡이는 새우를 샀다.     

나도 모르게 자주 휴대전화를 들여다봤었나 보다. 딸이 정신없다며 "휴대전화 금지!"라고 소리치더니 뼈 있는 조언을 한다. 지금 눈에 담을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마음껏 누리라고 말이다, 그래야 좋은 글도 쓸 수 있다고. 맞는 말이다. 알면서도 왜 눈은 내 손은 자꾸 휴대 전화기로 향하는지 모르겠다. 요즘 가족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나다. 그래서 오늘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닌 가족과의 유대감을 깊게 느껴보려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시간이었다. 되려 내가 집중을 못했던 거다. 즐거움과 기쁨은 나누어야 배가 되는 법이거늘. 사랑하는 사람들과 현재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임을 놓치고 있다. 모처럼 함께한 강아지가 모래사장을 뛰어다닌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에서 “개처럼 살자”가 스쳐 지나간다. 개는 밥을 먹을 때 밥을 처음 본 듯이 반가워하고, 산책하러 나가면 온 세상을 다 가진 듯이 뛰어다닌다고 했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의 말이다. “우와! 해가 지고 있어! 나도 개처럼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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