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어머님 식사는 잘하시지요?"
"원래 소식하시는 분이라…. 내가 입맛에 맞게 해드리지도 못하기도 하고…." 전화기 너머의 형님 목소리가 기운이 없다. 형님 나이 60이 넘었지만, 시어머님을 모시고 산다. 말할 수 없는 미안함과 죄송한 마음 때문에 전화를 자주 하기도 염치없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만 30년 넘게 근무하던 형님은 몇 해 전에 퇴임했다. 정년퇴직하고 나면 남들은 여행도 다니고 인생 2막을 잘도 시작하던데 내 형님은 퇴직하고 1년 만에 몹쓸 병만 얻었다. 깐깐한 남편 눈치 보느라 여행 한 번 마음 편히 다니지도 못했고,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을 싫어하는 아주버님 때문에 바쁜 직장생활에도 불구하고 외식도 안 하고 살았다. 밥은 꼭 냄비로 지은 밥만 드시는 아주버님이라서 형님 집에 가면 찰기 없는 밥이 꺼끌 거리기도 했다. 어쨌거나 본인 몸간수도 힘든데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구순 노모의 수발을 하고 계신다.
지난 주말에 형님의 얼굴을 뵈었다. 수척하고 볼 때마다 상해 간다. 점심도 먹지 않은 빈속에 약 한 줌을 맹물에 털어 넣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머님 들을세라 숨을 죽이며 소리 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서러움이 복받쳤는지 형님도 따라 울었다.
그날 아침에도 아주버님과 작은 언쟁이 있었던 모양이다. 무슨 말인가를 해주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아 겨우 한다는 말이 맥락 없이 "형님 참고 살지 마세요"였다. 뱉어놓고도 뭘 참고 살지 말라는 건지. 결혼하고 20년 넘게 형님을 봐온 느낌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던 것 같다. 아주버님은 하고 싶은 말, 행동을 참지 않는 사람이고, 내 형님은 부처같이 참는 사람이다. 그것이 내가 본 형님 가족이다.
모태 종교를 가진 형님은 신앙심이 깊다. 그렇지만 자랑하지도 않는다. 단 한 번도 "동서! 교회에 다녀!"라고 말한 적 없던 형님이 최근에는 얼굴을 볼 때마다 교회에 가자 한다. 심지가 굳어 보이던 형님도 많이 약해진 듯하다.
사람들은 ‘시’ 자 들어간 것이라면 시금치도 싫다고 할 만큼 불편해하지만 내가 시댁을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가 형님 때문이고 또 하나는 시어머님이다. 친정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이유도 있겠지만, 두 사람이 내 결혼생활의 안식처였다. 남편이 미울 때가 많았지만 어머님을 생각하면 참아지고 형님을 떠올리면 '미워하지 말자!'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 세월은 두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거동이 불편해진 어머님을 봐도, 빈속에 약을 털어 넣는 형님을 봐도 뭔지 모르게 서럽다. 내가 살아온 인생도 아니면서 두 사람의 인생을 뭘 안다고 억울한 생각이 들까. 꼭 맛을 봐야 간장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이겠는가. 처지가 같은 마음이라서 그럴 것이다. 고단하게 살아온 세월, 많이 견디며 지내온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 가기에.
인내와 사랑이 없었다면 가족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형님을 바라보면 종교에 의지하기도 하지만 ‘희생’과 ‘헌신’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내가 참으면 편히 넘어갈 것을." 이렇게 말하는 형님이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세상은 갈수록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가는데 나를 뒤로 하고 가족을 세우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구나!
나도 나이를 먹어간다. 남자로 살아보지 않았으니 남자 마음은 모르겠고, 여자 마음은 알겠다. 내 형님이나 어머님처럼 진정한 ‘희생’과 ‘헌신’이 가정을 지키고 시대를 지켜 왔다는 것을. 결코 그 삶이 헛되지 않고 숭고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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