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가
글 쓰는 용기
바람이 강하게 부는 아침 출근길이었다. 건강을 위해 걷기로 마음먹고 매일 아침 하천을 따라 걷고 있다. 버스를 타면 몸은 편하겠지만 아침에 조금만 서두르면 운동도 하고 교통비도 절약된다.
공기가 차다. 가을이 깊어지나 보다. 하얗게 핀 억새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이런 날씨에도 부지런한 사람들은 뛰거나, 자전거를 타며 충실한 하루를 시작한다.
건너편에서 징검다리를 건너오는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조심해. 조심해."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손주와 산책을 나왔나 보다.
"할아버지! 혼자 갈 수 있어. 나는 형이야."
"아이고 잘 가는구나! 우리 00이 건강해야지! 건강해야지!" 돌다리를 건너온 할아버지와 손자는 웃는 모습이 똑 닮았다.
틈새마다 빼곡히 비둘기들이 앉아있는 다리를 지나던 중 그만 새똥 벼락을 맞을뻔했다. 얼마 전에도 같은 장소에서 봉변당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발밑으로 떨어졌다. 운이 좋았다. 프랑스에서는 새똥을 맞으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속담이 있다고 들었다. 새똥을 맞는 일이 그만큼 드문 일이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생겨난 말이 아닐는지. 아무리 행운의 증표라도 반갑지는 않다.
걸어서 출근하는 것에 목적은 운동이다. 따라서 최대한 빨리 걷는다. 얼마나 빨리 걷느냐에 따라 출근 시간도 단축된다. 콧잔등에 살짝 올라온 땀방울에 운동 제대로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컨디션이 좋아 몸이 가벼웠나 보다. 가을 하늘을 사진으로 남기는 여유를 부렸다. 주말에 상견례를 했다는 언니에게 안부 전화도 하고, 벤치에 잠시 앉아 생각을 메모했다.
생각을 메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머릿속에서 생각만 해서는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종이가 없을 땐 핸드폰에 적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생각을 글로 정리해 주는 좋은 습관이다. 메모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아이디어가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은 기록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어보니 매일 쓰는 일이 부담이다. 실패가 두렵지 않다고 각오도 단단히 했지만, 그런데도 써야 하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일인지 고민하게 된다. 왜냐하면 잘 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자아와 의식이 매 순간 충돌한다. 복잡해지는 생각에 혼란스럽다. 단순히 쓰는 행위를 넘어서 자신과의 대화이자, 성장하는 과정 일부라고 애써 의지를 다져 보지만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아침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딱 오늘까지만 쓰자!'
언감생심 완벽한 글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편안히 읽히기만 해도 다행이다. 그것조차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괴로운 것이다.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니고, 누군가에는 도움이 되어야 할 터지만, 과연 나 조차에도 도움이 되는 글인지 모르겠다. 아직은 내 코가 석 자다. 이는 그만큼 내 상황이 절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독자의 이해를 걱정할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오늘도 서툴더라도, 나에게 주는 가치를 믿으며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용기를 낸다.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