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의 버스에 앉아 피곤한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남편도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타는 모습을 보았다. 운동을 위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데, 버스를 탔던가 보다. 이미 중부 능선을 벗어나고 있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바래가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다 해도 억울하지 않을 그것처럼 보였다.
지친 얼굴이 역력하고, 외투도 언제 적에 장만해 준 옷인가 싶다. 생일 때 좋은 옷 한 벌 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지나버렸다. 그 옛날 '카페'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풋풋했던 남편은 온데간데없고, 고단한 삶의 흔적만 남은 얼굴이다. 나도 그러할 테지. 부부는 닮아간다. 비록 다른 환경, 다른 성격으로 만났지만, 오랜 세월 생사고락을 함께하면서 우린 어느새 닮아 있었다. 나를 보듯 안쓰러운 것은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불현듯 남편을 만났던 때가 떠오른다.
명동 사보이호텔 근처 어디쯤 '러브스토리' 카페가 있었다. 20여 년이 훨씬 넘었으니, 지금도 그 자리에 카페가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친한 친구의 소개로 남편을 처음 만난 곳이다. 요즘 사람들은 러브스토리 영화를 아는지 모르겠다. 70년대 초반에 개봉된 영화이고, OST 음악이 유명했던 미국 영화다. 하얀 겨울의 눈밭에서 사랑하는 남녀의 눈 장난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영화 제목에서 따온 이름의 카페였다.
카페 이름만큼이나 설레는 기대를 하고 만났지만, 첫인상은 그냥 그랬다. 친구 얼굴을 봐서라도 밥은 같이 먹어 줘야 할 것 같아서 그때나 지금이나 유명한 '명동칼국수'에서 밥을 먹었다. 길거리 어딜 가나 흘러나오던 김건모 가수의 '잘못된 만남'을 들으며. 어찌나 인기가 많았던지 따로 배우지 않아도 가사를 다 외울 정도였다. 그날 우린 카페 안에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귀가 닳도록 들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부터, 오늘 아침까지 28년째 밥을 같이 먹고 있다. 서로 미울 때마다 잘못된 만남이라는 노래 탓을 하며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고 있다.
흔히 서로 맞지 않는 남녀를 화성과 금성에서 온 사람의 만남이라고 표현한다더니 우리 부부도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잘 살고 있는 게 신기하다.
젊었을 땐 라면이나 계란찜도 각자의 레시피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나는 '수프는 적게, 물은 많이', 남편은 '수프는 다 넣고, 물은 적게', 볶음 라면인가 싶게 끊인다. 서로의 라면에 질색하며, 결국 자기 입맛에 맞는 라면을 끓여서 먹었다.
계란찜도 내가 하면 물과 우유를 많이 넣어 푸딩처럼 한다. 남편은 물은 거의 안 넣고 새우 젓갈을 꼭 넣는다. 고춧가루도 약간 넣는다. 난 또 그 새우 젓갈이 싫다. 아이들 입맛도 나누어진다. 큰아이는 "엄마가 한 계란찜이 괜찮다" 하고, 작은 아이는 "아빠가 한 계란찜이 맛있다"라고 한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니 라면이나 계란찜 정도로는 다투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를 참아주고 맞춰주어서 그런 것이지, 입맛이 변한 것은 아니다.
부부라는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본다. 우리 두 사람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함께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해야만 가능한 시간이다. 신뢰와 애정을 쌓는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있지 않을 것이다. 힘들고 아플 때도 있었고, 즐겁고 행복할 때도 있었을 터다. 함께 늙어 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아직은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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