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잠깐의 휴식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다채로운 색의 나무들을 보니 시간이 참 빠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시간의 의미가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보았다. 매 순간 나를 만들고, 성장시키는 것이 시간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낙엽이 지고 나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낼 눈앞의 나무가 마치 내 인생과 닮은 듯하다.
봄에는 어린 새싹이 마냥 이쁘고 좋았다. 나도 그랬을 테지. 여름엔 잎이 푸르고 무성하여 나무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과 에너지가 대단했다. 내 젊은 날도 에너지가 가득했다. 가을에는 다채로운 색을 품은 것이 몸도 마음도 익어가는 지금의 내 모습 같다. 곧 추운 겨울을 피할 수는 없겠지.!
나무는 마지막 한 잎마저 떨구고 비로소 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봄을 기다릴 테지. 마치 다시 태어나듯이 말이다. 나도 나무처럼 성장하고 변하면서 살아왔다. 이제 더는 푸르지 않지만, 중년이 된 가을 나무처럼 여러 색을 지닌 사람이 되었다. 항상 푸르기만 한 것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생은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지 않은가!
커피를 손에 들고 지나가는 젊은 남녀가 아름답게 보인다. 젊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저들은 알까. 할 수만 있다면 붙잡고 알려주고 싶다. 나 역시 한때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착각할 정도로 자신만만했었던 것 같다. 그 패기를 ‘배움에 쏟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가 남는다.
그때의 내 시절도 물론 좋았다. 친구들하고 놀기 좋아해서 주말이면 몰려다니며 취미생활을 즐겼다. 취미생활이란 것이 볼링을 치러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거나, 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 정도였다는 것이 아쉽다. 하루하루 즐겁게 살았던 것 같은데 왜 가진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까.
내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학교를 더 다닌다거나, 자격증을 따는 일에 열을 올리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들처럼 더 열심히 살아볼 것을, 근시안적이고 게으른 삶의 태도를 지니고 살았던 건 아니었는지 뒤돌아본다. 오래전이라서 그런가, 꿈이나 목표가 기억나지 않는다. 젊은 나이에 밤잠을 줄여 가며 치열하게 살았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지금이 20대의 나보다 훨씬 열심히 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내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늘어간다.
“돈 공부해라.”
“경제 뉴스에 관심 좀 가져라.”
“작은 돈으로 주식을 모아보지 않겠니?”
경험하고 깨닫지 않은 이상 스님이 염불 외는 소리쯤으로 여길지도 모르지만 살아보니 무엇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알게 되니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다. 아무리 각자의 인생이지만 자식이다 보니 모른 체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때가 있는 법인 가보다. 그릇이 작으면 담고 싶어도 담기지 않는다. 조금씩 커진 후에야 비로소 삶의 지혜도, 깨달음도 담아지는 것인가 보다. 젊은 날의 열정을 독서에 쏟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지나간 것은 흘려보내고, 지금에 충실하면 된다. 나의 그릇에 무엇을 담을지 생각한다.
올해도 벌써 끝자락이 보인다. 가을의 나무는 벌써 겨울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듯이 보인다. 겨울의 적막한 고요 속에서 다시 봄을 기다리는 시작 말이다. 나도 중년의 가을 나무처럼 새로운 봄을 꿈꾸고 싶다. 성장하고,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깊고 고요한 겨울을 보내리라 다짐해 본다.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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