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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문목화씨 Jun 07. 2024

아들과 엄마 그리고 고양이

공황장애의 나비효과는 고양이였다

공황장애가 한참인 어느 날, 아내는 갑자기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나 뭐 사야지' 하는 식의 흘러가는 말인 가 했다. 그날 이후 아내는 고양이 입양 카페를 자주 들락거리면서 고양이 사진을 보여줬다. "음, 예쁘네.", "이 고양이는 무슨 종이야?" 라며 대화를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의도치 않게 나의 고양이 지식이 쌓여 갔다. 아내식 빌드업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어느 날 아내는 나의 출근 스케줄을 확인하고 함께 동행했다. 차 안에서 "오늘 고양이를 입양할 거야"라고 말하는 아내. 잠깐의 어리둥절함에 이어 그동안 듣기만 했던 고양이가 궁금해졌다. 아내의 결심은 진지해 보였고 "청소는 아침, 저녁 최소 두 번 이상 자주 해야 하고 고양이 똥, 오줌, 먹이는 내가 담당할 테니깐 오빠는 신경 쓸 일 없을 거야. 가끔씩 놀아주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라며 자신의 포부도 밝혔다. 단숨에 고양이를 입양하고 캣타워에 장난감까지 전달받았다. 입양한 고양이는 하얀 백색의 잉글리시브리티시숏헤어 종 암컷 고양이로 6개월이 된 아직은 어린 고양이였다.

무언가 애완동물을 키워 보는 것은 초등학교 때 발바리 이후 거의 30여 년 만이다. 처음에는 깨순이라는 아이를 키웠는데 깨순이는 깨숭이, 깨돌이를 낳았고 나와 형이 한 마리씩 담당했었다. 매일 하교 후 즐겁게 깨숭이와 함께 동네를 뛰어다닌 기억도 이제는 희미해져 가는데 새로운 반려동물이라니,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나도 괜히 히죽거릴 만큼 기대되는 일이기도 했다. 아내와 함께 지내면서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하나씩 생긴다. 공황장애에 이어 고양이까지.


깨숭이, 깨돌이와의 마지막 기억은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시골에서 자유롭게 키운 강아지들답게 온 동네 밭을 다 훼방 놓아 주변 사람들의 극성에 못 이겨 결국 시골 할머니네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지 새끼를 놓고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깨순이에 이어 깨숭이, 깨돌이까지 떠나보냈기에 아직도 촉촉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랜만에 아련했던 옛날 추억이 떠올라서인지 '김별'이라고 이름 붙인 고양이가 더 귀여워 보였다. 더군다나 고양이는 똥오줌도 가린다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애초에 반대표도 없었지만) 입양 며칠 전 동대문에서 산 캐리어가방에 고양이를 넣어서 집에 데려왔다. 조심히 가방을 열어 주니 부리나케 뛰쳐나와 소파 밑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다. 고양이는 낯선 환경에 오게 되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해서 아내와 나는 고양이를 신경 쓰지 않고 평소처럼 생활을 했다.


10여 분 정도 지났을까? 고양이는 우리 집에 적응이 된 건지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가 본 김별이의 첫인상은 너무 억울한 표정이었다. 재미있게도 이 단어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었고 아내도 크게 공감했다. 낯선 환경에 긴장되었는지 얼굴에 억울함이 가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집에 적응을 하고 자기의 영역을 확보하면서 억울했던 김별이는 귀여운 우리 집 막내가 되었다.


고양이를 입양한 지 1년이 훌쩍 지났고 이제는 나와 아내, 고양이 모두 서로가 익숙해졌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니 아내가 고양이를 입양한 이유를 물어보지도 않았었다.


그즈음 장모님과의 통화에서 우리가 고양이를 키운다는 사실을 안 엄마가 전화를 해왔다. 평소 손주 욕심이 극심했던 우리 경상도 어머니는 전화를 받자마자 흥분한 말투로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계속 뱉어 내셨다.


"고양이는 갑자기 왜 키우니?"

"고양이 키우면 아기도 잘 안 생긴다던데..."

"병원은 안 가고 네들이 지금 정신이 있니 없니?"


결혼한 지 4년이 지났고 줄곧 손주에 대한 기대를 계속하셨기에 이해하려 했지만 결국 어머니가 선을 넘고 마셨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 흔한 사춘기도 없이 잘 지내왔지만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나도 버럭 화를 내 버렸다. 어머니도 같이 흥분하면서 그렇게 통화는 종료됐다.


평소 1주일에 한 번 이상 통화를 하던 사이였지만 1달 동안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1달 뒤 아버지의 중재를 권하는 전화가 왔고 그다음 날 어머니의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서로 집안일의 선을 넘지 않겠다고 하셨고 우리의 선택도 존중해 주셨다. 나이 40이 다 되어서 40 춘기가 올 뻔했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왜 갑자기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했을까?

사실 아내에게는 친한 친구가 2명 있다. 아내가 공황장애가 한참이었을 때 그 친구들은 아기를 낳았었다. 공황장애 약을 먹고 있는 아내는 임신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던 순간이었다.(정신과 약을 복용 중에 임신을 하게 되면 기형아 출산의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이 있다) 친구들처럼 아기를 가지고 자녀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었는데 공황장애로 인해서 불가능해졌고 그 대상을 평소 좋아했던 고양이에게로 돌린 것이었다. 아직까지 고향에 계신 엄마, 아빠는 아내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실을 모르신다. 이런 사정을 모르셨기에 아기 대신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우리 모습에 더 반감이 컸던 게 아닐까? 물론 나도 정확한 이유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엄마와의 휴전 후 2달이 지난 요즘, 흥미롭게도 엄마는 매번 통화 중에 고양이에 대해서 물어보신다.


"고양이는 어떻게 잘 지내니?"

"고양이는 사람 좋아해? 먹는 건 뭘 먹는데?"

"이번에 서울 가면 고양이 한 번 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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