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가 앗아간 아내의 심신
2024년을 앞둔 12월 마지막 날이었다. 집에서 유튜브로 송구영신 예배를 보는 중에 아내는 감정이 폭발했다.
처음에는 울다가, 조금 진정되면서 웃다가, 졸린 듯 하품도 하다가 다시 꺼억꺼억, 예배가 끝나고는 고양이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얘기한다.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어서 놀랍지는 않지만 문득 아내는 어떤 하루를 보내는 걸까 궁금해졌다. 하루동안 어떤 감정의 변화를 겪는지, 그로 인한 피로함은 없는지?
이건 단순히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아내의 감정이다. 아내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현실적이고, 감정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갑자기 울다가 웃는 아내를 솔직히 이해하지 못한다. 너무 궁금해서 쉬는 날 아내를 관찰해 봤다.
오전에 일이 없으면 느지막한 10시경에 아내는 일어난다. 배가 고프다면서 소리치다가 냉장고를 연다. 집에 내가 있으면 "오빠 배고파, 밥 먹자."라고 나를 부르고 내가 없을 때는 가장 자신 있고 간단한 간장계란밥을 한다.(우리 집은 내가 음식, 아내는 설거지 담당이다) 이어서 아내는 집안 환기를 시키고 청소기를 돌리고 밀린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는 1차, 2차에 나눠서 해야지 제맛이라는 아내. 난 아내의 의견을 존중한다. 설거지에는 요즘 유행하는 남자 아이돌 음악을 노동요로 틀고 엉덩이를 실룩거린다. 하체는 춤을 추고 상체는 설거지를 하고 발은 싱크대 물을 틀었다 껐다를 반복한다. 아내의 특징은 매번 노래 한 곡만 무한 재생한다는 거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가끔 남자아이돌 음악을 흥얼거리곤 한다. 이 모든 활동 중간중간에는 '꿈의 집' 게임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잠깐, 집안일하다가 쉴 때도 잠깐, 씻고 나와서 머리에 헤어 제품 바르고도 잠깐, 그리고 고양이랑 놀고 나서도 잠깐. 이 잠깐이 모이면 충분히 3시간이 된다.
하루는 "왜 그렇게 게임을 많이 해?" 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내는 "아무 생각이 안 들어서." 라고 대답했다.
공황장애 이후 아내는 몸도 마음도 약해졌다. 사실 닭인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공황장애가 시작되기 전부터 전조증상으로 위와 장이 안좋았고 공황장애 직후로는 역류성식도염도 왔다. 체중도 1달 사이 5kg이 빠졌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외출도 힘들어졌고, 운동도 못하면서 일상생활이 더 힘들어졌던 것 같다. 당시 사진을 보면 다이어트가 된 건강한 마른 몸이 아니라 근육이 다 빠진 몰골이었다.
몸의 체력뿐 아니라 마음의 힘도 잃었다. 아내는 원래 상상력이 풍부하고 긍정적인 아이였다. 그러나 공황이 오기 약 1년전부터는 좀 달라진 것 같다. 결혼과 동시에 부동산 공부에 입문하면서 너무 집중을 했는지, 한 번 생각을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무한대로 확장되고 계속 이어진다고 했다. 그러다가 말미에는 자주 부정적인 결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공황장애가 시작되고 아내는 생각이 멈춰지지 않는게 굉장히 괴롭다고 했다. 단 1시간도 뇌가 쉬지않는것이다. 공황장애가 시작되기 직전에도 아내는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로 부동산 영상을 찾아보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파트 매수하는 꿈까지 꿨다. 일방적인 생각이 반복되면서 아내는 어느 순간부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시점이 바로 아내가 '꿈의 집'게임을 시작한 순간이었다.
마치 신생아인 양 침대에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가장 길고 움직일 때도 마치 연료를 넣는 것처럼 '꿈의 집' 게임을 하면서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내. 언젠가는 아내가 에스파 카리나를 이기고 꿈의 집 최고 레벨을 달성하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
'꿈의 집' 게임 속 미로가 공황장애의 탈출구로 치환되면서 '꿈의 집' 마지막 미션을 클리어하고 당당하게 스코어 네임에 아내 이름 석자를 기록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그날에는 공황장애도 즐겁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이지 않을까 상상을 해본다. 아내가 하지 않는 상상을 이제는 내가 하게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