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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문목화씨 May 17. 2024

이때의 상실감은 4차원 공간의 것

여러분 인생의 '필요시 약'은 무엇인가요?

아내가 처음 공황장애를 느꼈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제 있었던 일도 잘 잊어버리는 내게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평화로운 새벽 3시,

잠을 자던 중 아내는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허리를 숙이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리고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 내 울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완전 새하애 졌다. 그리고 솔직히 그 순간이 아직도 꿈만 같다.


그때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때의 기분은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별로였고 내 인생 최대의 상실감이었다.


아내가 옆에서 우는데 난 그저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주고 "괜찮아?"라는 말만 할 수 있을 뿐.


공황장애가 완치되지 않은 지금도 내가 아내에게 해주는 가장 큰 부분은 그때처럼 기다려주고 안아주고 옆에 있어 주는 것이다. 그때는 참 절망적이었는데 지금은 힘이 된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아내가 처음 공황 증상을 느꼈을 때 옆에 있는 나보다 고향에 계신 엄마를 더 찾았다. 공황이 나타나면 새벽이라도 어머님께 전화를 해서 기도를 듣고 지쳐서 자곤 했다. 다른 날에는 성경을 소리 내어 읽었고, 또 다른 날에는 찬송가를 열심히 불렀다. 아내와 난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다른 공간에 있었다. 마치 4차원 공간과 같은.


공황장애를 겪는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평소에는 너무나 일상적이다. 아내가 공황을 겪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원래 성격대로 활발하고 발랄하다. 방송에 나온 공황장애 걸렸다는 연예인들도 우리가 볼 때는 지극히 정상적이지 않던가.


하지만 공황장애의 가장 두려운 점은 언제 어디서나 발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순간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된 상태가 될 수 있다. 불안 상태에서 다시 공황장애가 반복되는 악순환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게 되면 매일 복용하는 약과 위급한 상황에 먹는 임시약인 '필요시 약'을 처방해 준다. 정말 힘들 때나 너무 참기 어려울 때 그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서 아내는 '필요시 약'을 복용한다.

인생에 있어서도 '필요시 약'이라는 응급약이 있으면 어떨까?

이 약을 먹고 모든 것이 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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