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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문목화씨 Jun 14. 2024

시어머니와 며느리

내가 아내였다면 난 솔직할 수 있었을까?

내가 아내였다면 난 엄마에게 솔직히 말을 했을까?


내가 며느리라서 시어머니에게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며느리가 결혼을 통한 자손 증식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인식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가족이 아프면 같이 아파해 주고, 슬퍼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나는 경상북도의 작은 시골에서 태어난 이제 40이 된 남자다. 결혼 전에 장인어른이 내가 태어난 도시를 듣고 “거긴 너무 보수적일 텐데”라며 걱정했었던 곳에서 자라왔다. 서울 태생의 강원도에서 거주한 경상도 부모님의 장녀인 아내와 결혼했다. 아내는 결혼 2년 차에 공황장애가 나타났고 현재는 4년이 지났다. 아직도 공황장애는 진행 중이다.


결혼 전에는 우리 아들 언제 결혼하냐면서 항상 결혼을 원했던 엄마가 결혼 4년 차가 되면서부터 손주 욕심을  자주 표현하셨다. 앞서 말했듯이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서 아기 문제로 한바탕 크게 싸우기도 했다.


하루는 아내의 공황장애를 엄마(아내의 시어머니)에게 솔직히 말하는 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엄마는 며느리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하면 오히려 자기 딸처럼 우리 부부를 더 걱정하시고 위로해 주실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건 단순한 나의 생각이어서 아직 실행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우리 부부에게 엄마는 매번 안부를 물어보신다. 정확하게는 병원을 잘 다니고, 아기 준비를 잘하고 있는 우리의 안부를 궁금해하신다.


엄마가 궁금해하는 우리의 안부는 아내의 공황장애가 점점 좋아지고 있는 중이다. 공황장애 중에도 추후 건강한 임신을 위해서 복강경 수술도 했었다. 본인의 생일날 전신마취 수술을 했고 비몽사몽인 순간에도 시어머니의 생일 축하 전화를 직접 받았었다. 공황장애 증상이 나아져서 단약을 시도했다가 간헐적인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필요시 약'을 먹었다. 결국 차를 타고 가는 도중 증상이 심해져 병원을 다시 방문했고 지금까지 계속 항우울제를 먹고 있다. 임신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단약을 먼저 하고 도전해야 한다는 우리 부부의 안부들. 엄마는 과연 궁금해하실까?


반대로 내가 공황장애에 걸렸다면 나는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을 했을까? 솔직히 나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가 말하는 증상들을, 힘들고 허무하고 피로한, 정확히 공감하진 못한다. 엄마도 흔히 하는 말처럼 “정신을 잘 챙겨, 정신력의 문제니깐 단디 챙겨”라는 식의 말을 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 보통 사람들에게는 공황장애가 정신의 문제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장모님도 아내에게 응원의 말로 '정신 단단히 붙잡고'라는 말을 했었으니깐.


아내는 공황장애가 나타나면서 살기 위해서 엄마를 찾았고 그 용기가 너무 대견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고 인정하면서 아내는 서서히 공황장애를 극복하고 있다.

  

공황장애에 대해서 아내의 의사 선생님은 '마음의 질환'이 아니라 '내분비 질환' 즉 호르몬의 문제라 말한다. 실제로 나와야 할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조절되지 않아서 겪게 되는 문제다. 본인이 아무리 제어하려 노력해도 쉽게 되지 않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공황장애 이후에 취하는 모든 행동은 본인의 의지다. 아내의 첫 용기로 인해서 지금 우리 부부는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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