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의 긍정 효과
나는 평소 관찰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단지 내가 처해진 환경이 나를 변화시켰다.
코로나가 시작되던 2020년 봄, 아내의 공황장애가 처음 발현되었다. 코로나가 점차 확산되면서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권장했다. 1, 2달 지나면 사무실로 다시 출근할 줄 알았는데 무려 1년 넘게 연장됐다.
그 해 우린 24평 아파트에서 10평의 작은 공간으로 이사를 했다. 거실, 주방, 화장실, 방 하나만 있는 구조였다. 작은 아파트로 가면서 많은 짐을 버렸지만 거실과 방에는 우리의 물건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짐을 제외한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아내와 내가 서로 교집합을 이루었다.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작은 거실의 한쪽 공간은 아내의 데스크톱과 나의 노트북이 놓여졌고 테이블 맞은 편은 버리지 못하고 가져온 회색빛의 3인용 소파 그리고 그 뒤에 침대를 두었다. 나머지 작은 방은 옷방이어서 우린 어쩔 수 없이 거실공간에서 일을 하고 쉬면서 잠을 잤다. 그렇게 우리는 의도치 않게 서로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루 24시간을 같이 생활하고 지켜보면서 다른 점(흔히 말하는 mbti는 정반대)이 많았던 우리는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가 악화되면서 친구들과의 약속이 없어지고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취향도 서서히 비슷해졌다. 흔히 우리네 아버지가 퇴직하면 어머니와 다툼이 생긴다던데, 우린 아직 어려서인지 아니면 이제 시작하는 부부 사이라서인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 코로나는 꽤 괜찮은 백신이었다. 공황장애 초기에 공황을 처음 겪는 아내와 나에게 시간적인 여유를 줬고 일종의 공황장애 매뉴얼을 만들어준 바이러스였다.
공황을 겪는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전후 징조나 조짐을 옆에서 자연스럽게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보통 하나의 이벤트가 발생하면 그 사건의 결과만을 주목하게 된다. 공황으로 생각해 보면 공황의 발생에만 집중하고 사후 대처에만 급급할 수 있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건 공황이 나타나기 전에 원인이 될 수 있었던 순간들, 그 조각들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공황 이후에 이어지는 잔잔한 호숫가에 던져진 돌과 같은 작은 진동까지도 아내와 같이 지켜보게 되었다.
아내와 공황 전후 증상을 옆에서 같이 경험했었지만 우리의 공황장애에 대한 생각과 이해는 여전히 다르다. 경험론자인 나는 아직 충분히 이해되지 않지만 그래도 코로나가 나에게 공황장애 입문 정도는 수료할 수 있게 도와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