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 장모님을 처음 본 것은 성북동의 한 전통 찻집에서였다. 아내와 만난 지 1년이 지나면서 부모님을 만났고 2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아내의 집은 가족들 대부분이 기독교다. 매주 주일마다 교회를 나가고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히 참석하신다. 아버님의 당부 말씀은 종교에 관한 것이었다. 부부가 되려면 종교가 같아야지 한 방향을 꿈꾸는 이상적인 가족이 될 거라고 조언해 주셨다. 천주교를 다니시는 고향의 부모님도 이 부분은 공감하신 부분이었다. 나는 현재 아내와 같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
결혼 후 아내와 함께 매일 성경 1장씩을 읽었다. 아내가 공황장애가 나타나고도 계속 이어졌으니 1년 넘게 유지한 습관이다. 루틴하게 뭔가를 하는 행위는 우리 부부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의 경우에도 어릴 적부터 성당을 다녔지만 성경을 제대로 본 적은 없어서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역사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취향도 한몫했다. 성경은 매일 잠자기 전에 침대에 기대어서 아내와 한 줄씩 나눠 읽었다. 1년을 읽다 보니 어느새 신약 부분을 다 읽게 되었다. 매일의 짧은 노력이 1년이 되자 큰 보람도 느끼게 되었다. 아내 역시 매일의 습관을 통해서 점차 안정되어 가는 것 같았다.
아내는 공황장애가 일어나고 나서 ‘죽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공포가 심했다. 다행히 아내의 곁에는 이야기를 나눌만한 사람들이 있었다. 부산에서 목사님을 하시는 이모부님의 도움으로 공황장애 초반부터 기독교 공부를 시작했다. 주 3회 하루 1~2시간씩 전화로 공부를 했다. 아내의 죽음의 대한 두려움을 전해 들은 이모부는 “새 신자 성경 공부”를 권했었다. 처음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었다. 꾸준히 교회를 다닌 아내도 진지하게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았었고 목사님과의 상담 후에 결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공황장애와 함께 기독교와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성경 공부를 시작한 후 아내는 찬송가를 따라 부르면서 집안일을 하기도 했고, 장모님이나 친척분이랑 전화를 통해서 같이 기도도 드렸다. 주일에는 아내 사촌 동생이 다녔었던 동네의 교회를 추천받아서 나가기도 했다. 매일 낮에는 목사님과 기독교 공부를, 밤에는 나와 성경 1장씩을 꾸준히 읽었다.
이런 계속된 공부와 정기적인 병원 방문,
공황장애 약을 먹으면서 아내는 점차 안정되어 갔다.
공황장애를 통해서 느낀 죽음이라는 공포가 아내에겐 아직은 너무 크고 두렵지만 처음 발현 했을 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 아내의 마음속 호수에 잔잔한 물결처럼 계속 떠 다닌다고 했다. 평소에는 잠잠하다가 공황이 나타나기 전에 물결이 울렁이면서 멀미가 생기는 느낌. 이전에도 한 번 이 물결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나도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의 경우에는 공황장애 이후 아내가 느끼는 죽음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었기 때문에 기독교, 성경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 죽음에 대한 무서움을 떨치고자 노력했다. 공황장애에 대해서 병원을 방문하거나 책이나 인터넷의 자료를 보면 안심하라면서 무조건 하는 말이 있다. "공황장애는 죽는 병이 아닙니다..." 죽는 병은 아니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하고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병. 아이러니하지만 그것이 공황장애다.
모든 공황장애의 케이스가 다르듯이 해결 방법 또한 여러 가지일 것이다. 각자에 맞는 방법을 택하고 마음을 단단히 하는 게 우선이다. 흥미롭게도 나의 아내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옆에 있는 난 그저 아내가 건강하고 본인이 괜찮으면 됐다.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