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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문목화씨 Jul 26. 2024

그녀는 의도된 수다쟁이

그리고 화장실 문을 열고 말았다

우리 부부가 처음부터 그렇게 잘 맞았던 건 아니다. MBTI로 생각하면 모든 게 정반대다. 성격, 행동, 생각, 계획 등 생활의 모든 요소가 다르다. 자신에게 없는 모습을 가진 상대방에게 매력을 느끼듯 우린 그렇게 만났어야 될 운명이었을까?


아내는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에 입학해서 20살에 상경했다. 어느 날 처제에게 편지 한 통이 왔다. 비가 많이 내리는 어느 날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학교에 데리러 오지 않아서 당황하고 짜증 났었다는 내용이었다. 문득 언니는 매번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개의치 않고 우직히 혼자서 집에 왔었던 모습이 생각이 났고, 묵묵히 혼자서 자신의 길을 가는 게 대견해 보였고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처제가 이렇게 말할 정도로 아내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챙겨주는 보살핌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었다. 공황장애가 발병하기 전까지는. 


케어에 익숙하지 않았던 아내가 공황장애 이후 처음 시작한 노력은 모든 것을 다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혼자 하는 게 익숙했고 도움을 받았던 경험이 없어서 그저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냥 필요한 것, 생각나는 것,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내게 말했다. 그렇게 아내는 의도된 수다쟁이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처음 맞이하는 상황에서 서로 어찌할 줄을 몰라했고 상대방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었다.

아내가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모든 걸 얘기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행동도 달라졌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 일을 볼 때 문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신혼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처음에는 ‘깜빡했나 보네, 정신이 없었나 보네’ 정도로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너무 자연스러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내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말했다. “혹시라도 화장실에 있는데 배가 아프거나 실신을 하면 문이 열리지 않으면 위험하니깐 문을 열어두는 거야.”


공황장애의 증상은 정말 다양하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린다던가, 답답해진다던가, 숨이 가빠진다던가, 온몸에 땀이 나던가, 복부의 불편함이 생긴다거나, 쓰러질 것 같다거나,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던가, 몸의 감각이 예민해진다던가.


아내는 이 중에서 복부의 불편함과 설사, 장염 증세 그리고 증상이 심해지면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가장 심각했고 실제로 밖에서 여러 번 쓰러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물론 집 화장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아내는 가장 위험한 순간, 가장 사적인 장소의 문을 열어 버렸다. 현실 세계의 화장실 문과 본인 마음의 문 모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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