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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문목화씨 Jul 12. 2024

공황장애 걸린 아내와 산다는 것

시한폭탄 같은 매력적인(?) 그녀

아내의 공황장애에 대한 글을 쓰면서 하나의 루틴이 생겼다.

퇴근하고 잠자기 전 샤워를 한다. 주방 식탁등만 켜 놓고 노트북을 켠다.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 둔 토픽 중 하나를 고른다. 최근 일도 있고 몇 년 전 사건도 있어서 기억이 흐릿하지만 최대한 당시를 회상해 가며 한 자 한 자 써내려 간다. 그렇게 30여 분을 쓰고 침실로 간다. 그때까지 잠자지 않고 있는 아내는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오늘은 뭐 적었어?"라고 묻는다.


며칠 전부터였다. 작성한 글을 읽어준 이후 매일 반복되고 있는 하루의 마무리 일정이다. 처음 글을 읽어 줬을 때 아내는 그때의 기억이 났는지 눈물을 흘렸다. 슬픔의 눈물이라기보다는 그동안 고생한 본인에 대한 고마움의 눈물로 느껴졌다.


아내의 눈물을 통해서 나는 건강해진 아내가 먼저 보였다. 지금까지 몇 년간 잘 이겨내줘서 고마웠고 대견했다. 혹시라도 그때의 아픈 기억을 꺼내면 다시 감정 이입되어 부정적인 생각으로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쳐다보는, 마치 유체이탈해서 자기의 육체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만큼 건강해져서 자기의 병을 큰 감정 없이 지켜볼 수 있는 힘을 기른 게 아닐까. 4년의 노력이 드디어 빛을 발했다.


공황장애 걸린 아내와 산다는 것은 쉽지 않으면서도 쉽다.


어려운 부분은 공황장애의 특성에 기인한다. 언제 어디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것. 옆에 있는 사람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적고 본인 혼자 그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불안감이 커지면 집밖으로도 나가기 힘들어지고 가끔씩은 집이라는 공간 자체도 힘들어질 수 있다. 아내의 경우에는 하계동에서 처음 공황장애가 발현되었다. 하계동 집을 정말 좋아했는데 공황 이후에는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것을 힘들어했다. 공황장애를 겪은 순간이 떠올라서일까? 눈 떠 있는 순간에는 언제나 침대에 누워 있고 나머지는 대부분 잠을 잤다. 공황장애에 걸린 현실을 벗어나려는 것처럼.


반대로 공황장애는 고장 나서 터지지 않은 시한폭탄처럼 평소에는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나도 가끔 아내가 공황장애 약을 먹고 있는 게 맞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보통 사람과 똑같다. 평범하게 출퇴근을 하고 보통의 일상을 보낸다. 친구들도 만나고 대외 활동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경우에는 정말 축하한다.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반증이니깐.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공황장애는 재발하기 쉬우니깐 옆에서 토닥거리면서, 다독여주면서 보통의 일상을 같이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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