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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산책길의 공포

by 눈물과 미소



나는 손이 크다. 손의 크기와 심장의 크기가 비례한다고 하니 나는 필시 커다란 심장을 지녔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을 잘 느끼지 못할 때도 있다. 교제 혹은 논의를 목적으로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라던가, 마땅히 할 만한 말을 한다던가 하는 상황에서 나는 제법 용감한 편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 장학사님께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나의 모습을 보고 나의 동료이자 이모뻘 되시는 선생님께서 나에게 반했다고 하셨었다. 젊은 시절에는 꽥꽥 소리를 질러가며 무서운 놀이기구도 곧잘 탔다. 지금도 바이킹은 제일 마지막 칸에서 양손을 들고 탈 수 있다.


이렇게 대체로 겁이 없는 나이지만,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도 많다. 내가 특별히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공포영화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던 시절 사촌 언니가 매일같이 드라큘라며 귀신 그림을 보여주며 나를 겁주어서 트라우마가 남은 것인지 어쩐 지는 모르겠으나,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감이 유독 심해 나는 무서운 이야기도 공포영화도 질색을 한다.


오늘은 산책길이 무서웠다. 이제는 해가 빨리 떨어져서 산책로가 어두워진 데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한층 더 스산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날씨로 인해 산책을 하는 인파도 많지 않아 걷기가 무서웠다. 가끔 사람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나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싶어 몸을 옹크리게 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인적이 드물어 무서웠고, 사람들이 한두 명씩 보이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사람이 있어서 무서웠다. 사람이 없어 조용한 길도, 빗소리에 울리는 사람 소리도 나의 공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오늘은, 방향을 전환하여 평소와 다른 밝은 길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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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