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사무실 서랍에 넣어둔 나의 립스틱에 칼집을 내 부러지도록 만든 날이 있었다. 책상 옆에는 주인 모를 털장갑 한 쌍이 놓여 있었다. 장갑의 엄지 손가락 부분에는, 부러진 립스틱과 동일한 색상의 무언가가 미세하게 묻어 있었다.
장갑을 비닐팩에 조심스레 담아 집에 가져왔다.
몇날 며칠 장갑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세탁을 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오늘, 나는 세탁한 장갑을 처음으로 끼고 조깅을 했다. 추위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장갑 낀 손으로 닦아냈다.
나를 괴롭히는 범행에 쓰이던 도구가 이제는 나의 눈물을 닦는 도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갚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그렇게 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