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집 짓기 프로젝트 13-1)
어쩌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나의 대답은 이거다.
'지금이 아니면 내 무모한 자신감을 현실로 일으킬 자신이 없겠다. 지금이다.'
내가 10년 넘게 살던 서울은 참 좋았다.
지하철이 가까워 밤 늦게까지 야근을 해도 걱정이 없었고, 주말에 차가 붐비는 곳으로 놀러갈 때면 버스를 타고 한 번에 도착할 수 있어서 이쁘게 꾸미고 가벼운 가방을 매고 걸어가는 발걸음은 리듬을 타듯 부드러웠다.
금요일 저녁, 남편과 퇴근하고 만나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근처 맛집에 찾아가 반주도 한 잔 하기 좋았고
선선한 바람이 불 때면 손 잡고 걸어가 달달한 라떼한 잔 사먹기 좋았다.
밤 늦게까지 넷플릭스를 보다가 먹고싶은 아이스크림이 생각나면 점퍼하나 걸치고 후다닥 뛰어나가 먹고싶을 예정인 아이스크림까지 모조리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기도 좋았다.
어디 한군데 아파서(나는 10에 9은 코감기였고 남편은 피부과, 안과, 이비인후과 상당히 골고루가야했다) 급히 병원을 가야할 때, 가던 병원이 휴일이라도 다른 병원을 찾아가기에도 참 편하고 좋았다.
좋은 점이 참 많았던 서울살이를 마치고, 우리 아기가 17개월이 되었을 쯤 나는 경기도로 이사를 했다.
경기도 깊숙히, 도시와 시골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마을이었다.
캐드 도면파일은 회사를 다니면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옆 부서 부동산팀에서 열심히 사무실캐드 작업을 하는 모습을 자주 봤었다. 회의실에서 다 같이 캐드작업 중인 파일을 보면서 회의도 몇 번이나 했었다. 사무실 공간에 들어가는 모든 사무제품들의 수량을 파악하고 구매를 위한 일이 나의 업무 중 하나였다.
다시 말하면, 나도 서당개 삼년정도 된다는 말이다. 처음 주택을 짓기위한 도면을 보았을 때, 너무 설레고 재밌었다.
집에서 공책과 캐드도면종이를 피고 앉아 한시간, 두시간이 흐르도록 벽을 세워보고 지워보고 방을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보면서 머리 속으로 상상하던 형태의 집안을 설계하는 시간은 정말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내가 공간을 만들고 꾸미는 것에 큰 관심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더 디테일하게 말하고 싶지만 내용이 산으로 갈 것 같아, 이쯤으로 정리하자면 집을 짓는 모든 부분이 즐겁고 재밌지만은 않겠지만 그마저도 나에겐 밤새서 공부를 해볼 만큼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계약한 집에 1차 계약금을 냈고 2차 계약금 중도금을 냈다. 대출도 함께 받았다. 공사를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넉넉잡아 편도 2시간은 되는 거리를 거의 매일같이 오고가며 공사현장을 찾아갔다.
어느 주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네, 공사를 멈추신다고요? 네..알겠습니다.'
그 날부터 우리에게는 인생에 가장 큰, 지금까지도 너무 힘든 일을 겪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