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언제나 다시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보다 두 살이 많은 친 오빠는 20살이 되면서 새로운 출발을 위해 집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가야 하는 다른 나라로 떠났다. 사실 난 오빠의 새로운 도전에 별 생각이 없었다 '잘가! 재밌겠다 전화하고!' 이정도? 흔한 남매란 이런 느낌이 아니였을까? 아닌 남매도 분명 있겠지만 말이다.
그날 밤, 작게 흐느끼는 소리에 눈 비비며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오빠 방 앞에서 아빠는 나에게 '쉿~ 괜찮으니까 들어가서 다시 자 엄마가 슬픈가보다.'라며 아빠는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나는 '엄마가 왜 슬프지? 오빠는 신나게 비행기를 타러 가던데.. 내가 모르는 다른 사정이 있었나?' 생각하며 그날 밤 다시 잠에 들었었다. 나이가 든 지금은 그 당시에 문틈으로 보이던 오빠 침대맡에 걸터앉아 베개를 끌어안고 울고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기가 21개월이 되었을 때, 어린이집에서 다음 달 등록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연락을 받은 날, 마음이 이상했다. '아기가 적응을 하고 잘 다닐 수 있을까, 나와의 분리가 가능할까' 싶은 걱정과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 어린이집에 갈 날이 오다니!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하는 기쁨이 공존하는 마음이었다. 남편과 서류를 작성해 기관에 방문하던 날, 떨리는 마음으로 어린이집 문을 열고 이곳 저곳을 확인하고 착찹하면서도 설레는 오묘한 감정이 오고갔다.
남편은 '아기도 새로운 환경에서 여러가지 활동도 하고, 너도 그 시간 동안만큼은 너를 위한 시간을 갖을 수 있잖아. 청소도, 집안 정리도 할 수 있고 여유도 조금 가져보고 새로운 공부도 해볼 수 있어'라며 나에게 부담갖지말고 함께 해보자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 땐, 그래 해보자. 함께 해보자. 마음먹었다.
새로운 곳에 대한 적응이 쉬운 일은 아니였다. 분명 낯선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어린이집이 흥미롭고 재밌지만 엄마아빠가 없는 곳이라는 점에서 많은 분들이 나에게 아기가 울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아질 것이니 참고 함께 기다려보자고 했었다. 이제 적응이 됐을까, 싶다가도 나를 보면 울며 달려오는 아기를 보고는 나의 섣부른 판단이었나보다라는 생각에 포기할까 싶기도 했었다. 그렇게 몇 일이 지나고 나 또한 어린이집에서 혹시 울고 있을 아기모습이 아른거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던 어느날 '오늘 아기가 낮잠도 자고 일어나 간식도 잘 먹었어요. 이제 조금씩 적응을 하고 있어요 어머님.' 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난 주책맞게도 선생님 앞에서 눈물이 찔끔나더라.
'너는 열심히 하고 있었네.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조금씩 마음도 열었구나.'
아기는 지금 해야 하는 일을 충실히 잘 해내고 있었다. 밥도 잘 먹고 새로운 놀이도 열심히 참여하고 잠도 잘 자면서 해야 하는 일을 하루하루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내 품 안에서 안겨있던 작은 아기가 어느 새 아장아장 걷더니 이제 내 손을 놓고 뒤돌아 나를 보곤 씨익- 웃으며 후다닥 뛰어간다. 언제 이렇게 컸나.
나도 나의 아기처럼 하루하루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내고서 우리 다시 만나, 함께 손 잡고 집에가야겠다.
집에 가서 맛있는 따뜻한 밥도 같이 먹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보드라운 살도 부대끼며 살아야겠다.
어린이집에 적응해 다시 데릴러 간 나를 보고 꺄르륵 웃으며 달려오던 아기를 본 그 날, 나는 마음 먹었다.
너가 앞으로 내 곁을 떠나 더 다양한 길을 떠난다면
언제나 내가 같은 자리에서 너를 기다려야겠다.
그래서 너가 힘들고 지쳐 쉬고 싶을 때,
지금처럼 나에게 달려올 수 있도록 내가 너의 집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