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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우리들의 여행기(3)

by 다움 Jan 09. 2025

 쨍쨍 내리찌는 한여름이 되었을 때, 우리는 해가 더 쨍쨍한 동남아로 떠났다.

부모님이 계시는 동남아시아였다. 


부모님의 해외생활은 2002년도부터였으니 벌써 20년도 더 되었다.

20대의 어렸던 내가 생각했던 부모님의 해외생활은 그저 이민일 뿐, 애틋하고 걱정되는 듯한 느낌은 없었다.

다만, 가끔 어린 시절 먹던 엄마표 수제비가 생각나고 김치콩나물국이 그리웠던 때가 있었고

열심히 생활하는 평일보다는 모두가 가족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갖는 주말이 더 외롭고 배도 고팠었다.

그래도 엄마에게 오는 전화를 받을 땐, 항상 씩씩한 척을 했다. 밥도 잘 먹었고 청소도 열심히 했다며 자랑스레 얘기하곤 했었다.

내 마음 속, 내가 중심이었던 20대 때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보다 나에 대한 생각이 더 컸었다. 결혼을 하고 현실을 마주한 지금은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30대 후반에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셨던 어렸던 나의 부모님 감정은 어땠었을 지, 해외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두렵지는 않았을 지, 아빠엄마도 엄마가 그립지는 않았는 지,

요즘 나는 무심코 설거지를 하다가도, 아기를 재우고 소파에 앉아 큰 숨을 내쉬다가도 생각이 났다. '힘들었겠다. 그 때, 오빠랑 나 키우면서, 타향살이.‘

나는 지금 엄마아빠와 3,500키로는 더 떨어져 잇는 곳에 살고있다는 현실이, 부모님과 떨어져 새로운 시작을 한 지금이 나에겐 타향살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들지 못했던 감정과 기분이 소용돌이 치듯 한다. 외롭고 울적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육아에 지친 마음을 달랠 곳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공감받고 싶고 위로 받고 싶었던 마음이었겠지.

내가 겪고 있는 지금의 감정이 나의 부모님이 과거엔 이미 겪었던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면서 부모님이 보고싶었던 것 같다.


‘엄마, 나 지금 갈게. 저녁밥 먹고 자고갈래요.’ 

전화 한 통 걸고, 가디건 하나 걸쳐 신발 신고 나가 엄마한테 가고 싶었던 밤이 있었다.

괜히 핸드폰만, 만지작 만지작. 

아기를 낳아 키우고 있는 서른이 넘은 내가 아직 엄마가 그리운 걸 보니, 엄마는 자식에게만 어른인 모양이다.




 남편과 나는 지금, 육아휴직 중인 지금이 아니면 2주나 넘는 시간을 쓰며 해외에 있는 부모님께 가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아기의 온갖 짐을 싸기 시작했다.

10개월 아기의 짐은 우리의 짐에 3배는 되었다. 바리 바리 싼 짐과 함께 우리는 아기와 함께 부모님이 있는 나라로 떠났다.


'공항! 출발!'

'비행기! 출발!'

공항에 도착해 내릴 때, 느껴지는 공기와 바람은 항상 나를 설레게 한다. 들고가는 케리어가 아무리 무거워도 떠나는 발걸음은 가볍고 리듬을 타는 듯 부드럽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아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전부 챙겼는지 10번은 더 확인한 듯 했지만 그래도 괜히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렵고 힘든 비행 시간은 아니였다.

이륙, 착륙 때 귀가 압력으로 인해 먹먹해 지지 않도록 아기에게 분유를 먹였고 틈틈히 품에 안고 재워주니 곤히 잠도 잘 잤다.

번외 이야기지만, 이렇게 아기와의 비행이 할만 하다고 생각한 우리는 4개월 뒤 한번 더 비행을 도전하고는 크게 후회했었다.

당시에 '이제 다신 너(아기)랑 비행기 안타..내가 진짜 너가 5살이 되서 내 말을 온전히 알아듣기 전까지는 내...결단코 너랑 비행기를 타지 않으리..라' 남편과 나는 이구동성으로 말했었다.

아기가 조금 더 크면서 관심사가 넓어지고 잠자리에 습관을 가지게 되면서 비행기에서의 잠자리가 낯설고 이상했던 것 같다. 잘 할 수 있다고만 생각하고 아기를 힘들게 했던 우리의 잘못이었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나도 남편도 지친 몸을 이끌고 공항에 도착했다.

오후 비행기였던터라 도착 시간은 새벽이었다.

 새벽까지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하기 위해 기다리셨던 부모님과의 상봉을 뒤로 하고 잠부터 자러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푹 쉬고 일어난 첫 째날 아침, 이제 여행 시작이다!

아기도, 사위도 온다는 소식에 깔끔하게 치운 방, 포근한 이불과 아기가 좋아할지 몰라 사두셨다는 폭신한 인형들(아기는 너무 좋아해서 커다란 인형 3개를 전부 한국으로 가지고 왔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셔서 차려주신 아침밥까지 몸도 마음도 편안하고 따뜻했다.

'나 친정왔네..' 남편이 침대에 누워 말했다. '응? 그건 내가 말해야지 여보' 나는 너무 어이없는 남편의 말에 실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다같이 든든히 아침밥을 먹고 아빠는 출근을 하셨다. 엄마, 남편, 나, 아기는 현관문 앞에서 '하비 빠빠'를 외치며 아빠를 출근 시키고 다 같이 놀러갈 채비를 시작했다.

들뜬 남편과 나, 그리고 더 신나신 엄마와 함께 우리는 매일 점심마다 현지 식당, 그리스 식당, 중국 식당, 이태리 식당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새로운 음식에 큰 거부감이 없는 우리는 이곳 저곳을 돌아 다녔고, 주말엔 모두가 함께 아침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동남아의 아침식사는 외식문화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맛있는 쌀국수는 아침에 먹을 수 있다. 아기의 이유식을 챙겨 우리는 매주 주말마다 아침 쌀국수를 먹으러 다 같이 나왔다.

'이서방, 이거 먹어야되! 이게 제일 맛있어!' 국물국수파인 아빠가 챙겨주는 메뉴에 볶음국수파인 남편은 항상 울상을 지었다. '아버님, 저 볶음국수 먹을건데..'

이럴 땐 항상 두 개 다 시켜버리는 아빠였다. 우리는 매번 배도 터지고 웃음도 터지는 식사를 하고 나온다.

부모님은 너무 오랜만에 본 손주를 많이 이뻐하셨다. 그리고 아기도 오랜만에 본 함미하비를 위해 첫 걸음도 보여주었다.

'어? 봤어? 걸었어!' 아장 아장 두 걸음 걷고 털썩 주저앉는 아기를 모두가 처음 보고 다같이 박수치며 웃었고, 박수치는 우리를 놀래서 처다보는 아기의 얼굴은 마냥 신나보였다.

그렇게 올해 여름이 지나갔다.


이 시점에서 나는, 2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이야기를 꺼내려한다.

우리의 여름이 거의 지나간 9월 초, 나는 주택에 입주했다.

나의 첫 신혼집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2년 전 아직 아기가 없고 신혼 초의 우리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빨래 개는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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