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1년이라는 시간
모든 일이 그렇듯 쉬운 일은 없겠지만 그 당시 나에게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육아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분명 육아를 처음 경험하는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마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아기에게 모유를 주기 위해 내 식사도 챙겨야하고 쪽잠을 자며 아기도 챙겨야하고 집안일도 해야한다니.. 남편은 집과 직장의 거리가 멀어 출퇴근 시간은 편도로 1시간 40분 정도되고 있었고, 일도 적지 않은 편이라 야근이 잦을 수 밖에 없었다. 즉, 남편도 나도 각자도생, 열심히 일하고 잠들기 전에 만나 오늘도 고생했다며 서로를 토닥여줄 수 밖에 없었다. 육아는 당장 혼자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아기를 가지면서 임산부가 되었을 때는 출산에 대한 고민만 했다. 아기를 키우는 일은 그 당시 때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정도 고민은 했다. 필요한 물건을 이미 알아보고 준비한다던지, 어디에서 아기를 재울지, 어떤 침대를 사용할지라던지 등과 같은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했었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당연히 필요한 물품을 사두는 것은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었다. 해야만 하는 일, 해내야만 하는 일, 누구나 다 하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점점 기운이 안나고 도돌이표 같은 일상에 우울함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어떻게하면 나도 아기도 행복하게 잘 나아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 아내도 내 아기도 힘든거면 그럼 당연히 내가 함께하는게 맞잖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남편의 말에 내 마음이 반짝
내 현실을 반영한 듯, 어둡기만 한 거실에 앉아있는 내 앞에 남편의 머리 뒤 후광이 번쩍,..
그 순간부터 확실했다. 내 우울함은 사라졌다.
이른 봄, 3월
나와 남편은 1년 동안 육아를 함께하기로 했다.
그리고 1년 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함께 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다시 오지 못할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껏 모아둔 돈을 싹싹 긁어모아 1년 치 계획을 먼저 세우기 시작했다.
당연히 부족한 생활을 하겠지만.. 역시 계획형 인간인 우리는 하루, 한 달, 일 년치를 열심히 세웠고 그 시간들조차 너무 즐거웠다. 우리가 함께 있을 수 있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 동안 4 계절을 어떻게 잘 즐기며 아기를 키울 것인지 너무 기대가 되었다.
아기를 갖기 위해 나는 퇴사를, 육아를 함께 하기 위해 남편은 육아휴직을 선택한 만큼 후회없이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1년 동안 목표를 세우고 공동의 목표도 세웠다. 하루에 육아시간을 제외한 아기의 낮잠시간, 밤잠시간을 우리의 자유시간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시간동안은 아기 보초를 서는 1명과 공부를 하는 1명으로 계획을 세웠다. 공대생인 남편은 영어공부를 해보고 싶었고 나는 내가 이제껏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들을 공부해보고 싶었다. 둘 다 살면서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분야였다.
계획은 이렇게 구성되었다.
먼저 지출의 최고봉인 외식을 최대한 줄이고 집밥을 위주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예전엔 늦게 퇴근하고 온 남편을 기다렸다가 함께 야식을 먹는 것이 소소한 재미였기에 야식이나 외식비용이 우리의 지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일단 이 부분을 대폭 줄이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육아휴직 비용과 우리가 저축해둔 비용을 쪼개서 매월 정해진 금액을 사용하기 위한 계획을 철두철미하게 세워뒀다.
두 번째는 함께 육아를 보게되면서 오전일과, 오후일과를 나누어 시간을 짜둔 것인데, 아기의 바이오리듬이 곧 우리의 리듬이기에 새벽부터 밤까지 우리의 텐션을 조절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아기를 키우면서 느낀 점은 ‘아기의 낮잠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나에겐 꽤 활력을 주었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낮잠시간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전과 오후로 육아를 나누어 놓으면 그 사이의 낮잠시간에
각자 할 일을 정해둘 수 있고 오후에 육아를 다시 시작하기 전에도 활력을 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아기가 깨어나는 새벽 시간(첫 아침시간)과 아기가 잠들기 전 시간(마지막 저녁시간)은 함께 육아를 하는 것이다. 가장 지치고 힘든 시간이기 때문에 함께하기로 했다. 마지막은 ‘열심히 돌아다니자’ 인데, 가능한 거리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4 계절이 있는 이 나라의 이쁜 풍경과 달라지는 공기를 열심히 감상해보기 위해서 매일매일 나들이를 가기로 계획했다.
<육아휴직 계획>
1. 외식은 되도록 줄인다
2. 오전과 오후로 나눠 육아를 한다
3. 이른 아침과 저녁은 함께 시간을 보낸다
4. 매일매일 나들이를 가자
<일기-컴컴한마음이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