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기절 할 것 같은 기적
얼마 전, 재미있게 읽은 책 중 [비가 오면 열리는 서점]에서 이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인간에게서 오래된 기억을 가져오는 바람에 그들이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잖아. 난 아직도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와 걸음마하던 때가 기억이 나는데 말이지' 라고 동생 도깨비가 말하자 형 도깨비는 '바보야, 그걸 남겨놓으면 인간이 아기를 낳아서 키울 것 같아? 내가 그나마 훔쳐오니까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아기를 갖는거지' 이렇게 공감이 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웃으며 이 부분을 읽었었다. 마침 나도 하루 하루 행복하지만 힘든 육아를 하고 있던 참이라 더욱 공감이 갔다. 만약 나의 아기 시절을 기억한다면, 절대 아기를 낳지 않았을까? 우리 엄마는 얼마나 힘든 육아를 해오신 걸까?
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 집에 온 날 부터 100일이 지난 시점까지, 과장을 조금 붙여서 하루도 2시간 이상을 자 본 적이 없다. '가능한가? 이게 가능한 일인가? 2시간 씩 아기가 우는 것이 가능한 건가??' 싶었다. 눈이 쾡해지고 식욕이 떨어지고 웃음이 나지 않는다.. 와… 신생아 진짜 어렵고 힘들었다. 하루는 새벽 3시, 젖을 물리고 트름을 시키기 위해 어깨에 아기를 기대게 했는데 아기와 함께 그렇게 잠이 들어 2시간이 지나 그 상태 그대로 다시 젖을 물렸다.
또 하루는 30분 동안 아기띠를 매고 거실에서부터 방까지 왔다 갔다 걸어다니며 우는 아기를 재웠다. 30분이 넘도록 안고 왔다 갔다 둥가 둥가무릎을 살짝 접었다 피며 천천히 집 안을 돌아다니자 아기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내려 놓으면 바로 깰 것만 같아서 아기띠를 한 채, 풀썩 소파에 기대고 앉아 내 품에 안겨 자고 있는 아기를 보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화장실이 갑자기 너무 가고 싶더라..
아..이를 어쩐담..
내려놓으면 30분동안 어렵게 재운 나의 노동이 물거품이 될 것 같고, 다시 아기가 울면 나도 울 것만 같았다. 화장실을 참던 나는 자는 아기를 품에 안고 화장실 병기통에 앉아 일을 보았던 그 날, 내 인생에 나 자신이 부끄럽고 마음 속 어디선가 울컥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는 경험을 처음 해보았다. 그 날, 나는 맨탈의 끝자락을 톡 하니 놓았던 날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육아에 맨탈이 바사삭 깨졌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날 남편이 오자 하염없이 울었던 날이고, 남편은 그 날 육아휴직을 결심했던 날이다.
24시간 육아는 정말 빠르고 느리고 힘들고 눈물나고 다 했다. 주말이 되면, 남편은 항상 아기를 먼저 안아 내가 해오던 육아의 절반 이상을 함께 했다. 아기띠를 하고 바람을 쐐러 나가고, 품에 안아올려 둥가 둥가 천천히 흔들며 재워주고 새벽에 일어나 분유도 먹였다. 그러다 월요일 출근을 하러간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여보, 나 웃긴 일이 있었어! 내가 회사 1층 엘레베이터 앞에 서서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무릎을 굽히고 리듬 타면서 둥가둥가를 하고 있더라! 부끄러운데 웃겨서 혼자 웃었자나!'
'너무 웃겨 진짜..누가 봐도 아기 아빠다!'
우리에게 신생아 육아는 고된 노동의 끝판왕이면서도 그때 생긴 전우애가 지금까지 우리를 돈독하게 해주는 원동력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00일이 조금 지난 시점, 아기가 처음으로 혼자 잠이 들었다. 내 품에 안겨 토닥여야 잠이 들던 아기인데 혼자 잠든 아기를 보고 두 손을 입에 가져가 터져나오는 소리를 막았다. 정말 기절하기 직 전에 아기에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 듯 했다. 아기가 태어난 지 6개월 후, 남편은 육아휴직을 쓰고 나와 함께 육아에 참여했다. 결혼하고 가장 고마운 순간이 있었다면 이 순간이었다.
그리고 벌써 두 돌을 바라보는 지금도 가끔 나가는 나의 맨탈을 잡아주기 위해 연차를 사용하고 아기를 봐주는 순간 순간의 남편에게 참 고맙다. 우리는 모아둔 돈을 쪼개가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1년을 보내기로 했다. 조금 부족해도 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나는 나중에 이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글을 쓴다.
나이가 들어 이 글을 읽어도 그 날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생각 날 수 있도록.
<아기가 잠든 저녁, 고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