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초등학생 시절 엄마가 '들어가서 공부해라' 하시면 쪼르르 방에 들어간 나는 책상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 멍 때리고 상상하다보면 한시간이 훌쩍 지나있곤 했다. '잠깐 딴 생각을 한 것 뿐인데 왜이렇게 시간이 훌 쩍 갔지?' 생각보다 훨 씬 지나있는 시간을 보고 어린 나는 자주 놀라해했었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나는 이 멍때리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는데 특히 요즘하는 쓸데없는 생각 중 하나가 바로 '20대에 나를 만나면 이 말을 꼭 해줘야지' 이다. 그 중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하늘 좀 보고 살아라' 이다. 나는 날씨에 따라 기분이 참 많이 바뀌는 편인데, 우중충한 날씨에는 기분이 가라앉고 해야 할 일을 미루며 이유없는 무기력을 느낄 때가 많다. 요즘은 틈만 나면 하늘을 보게 된다. 가을하늘은 높고 연한 하늘색을 띄는 것이 그렇게 이쁘더라. 뭉개 구름에 노을이 참 이쁘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스스로에게 아쉬움이 남는다. 20대에 때는 시간도, 열정도, 체력도 지금보다 전부 좋았을텐데.. 더 많이 보고 느끼지 못했던 내 과거가 참 아쉽다.
서른이 되어 아기를 낳고 아기를 위해 쓰는 시간이 하루 24시간도 모자라다보니 오직 나만을 위해 쓰는 시간들이 소중하고 갚지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하루를 오롯이 나의 시간으로 가질 수 있었던 그때의 나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시간의 소중함을 알아버린 지금이, 나를 더 열심히 살게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 오늘은 아침 8시까지 아침밥을 먹고 오전 장을 보러가야해' 나는 주말 아침부터 바쁘다.
특히 김밥을 먹고싶은 날은 더 바쁘다. 간단히 아침을 준비해 먹고 설거지하고 아기 옷을 입히고 나도 나갈 준비를 마친 후 김밥재료를 구입하고 아기와의 오전 시간도 잘 보내고(떼우고) 와야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숨이찬다. '그럼 오후는 뭐해?' 남편은 벌써 오후까지 계획을 짜 둘 생각인가보다. '오..후는 일단 낮잠을 재우고 고민하겠어!' 우리의 하루는 아기의 낮잠을 중심으로 오전과 오후로 나뉜다.
대략 이렇다.
- 하루 일과 -
오전 6시 : 기상
오전 8시 : 아침밥
오전 11시 : 오전 일과(놀이터, 장보기, 산책 등)
오후 1시 : 낮잠 끝
오후 2시 : 점심밥
오후 5시 : 오후 일과(나들이, 산책 등)
오후 6시 : 저녁밥
오후 7시 : 아기 재우기
산책의 사전적 의미는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 이다.
돌도 안된 아기와의 산책은 말이 좋아 산책일 뿐 사실상 시간을 열심히 보내는 일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아기와의 산책시간 안에는 내 시선의 99%가 아기에게 가 있고 더우면 더울까봐, 추우면 추울까봐 온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다 음식점에서 식사라도 한번 하려면 아기가 울까 노심초사 신경이 쓰인다. 혹여 아기가 울게되면 달래주고 안아주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없었다. 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참 서로의 입에 밥을 먹여주기 바빴다. '이거 먹어 얼른, 엄청 맛있다 이거!' 아기를 안고 달래는 남편의 입에 열심히 음식을 넣어주면 '음~ 정신은 없는데 또 맛은 있다?' 하며 웃어보는 사람이다. 우리는 또 하루의 반나절을 이렇게 산책하고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하며 보낸다. 분명 이 시간 안에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도 포함이 되어 있지만 한 번에 온전히 할 수 없고 청소하다가 아기가 울면 달려가고 빨래를 널다가 아기에게 달려가고… 반복이랄까? 여튼 그렇다. 오전의 일과가 끝이나면 이제 아기는 낮잠을 잔다. 사실 아기가 자면 나도 체력을 충전하기 위해 잠을 자야하는게 국룰인데, 그 시간이 아까워서 자꾸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된다. 아기가 6 개월이 되던 시점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주제로 이것 저것 찾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글을 쓰고 싶다거나 작가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다거나 한 적은 없었다. 다만 내가 부모님과 떨어져 살기 시작했던 19살부터 일 년에 한 권씩 썼던 다이어리는 내 일기가 빼곡히 적혀 있는데 보통 일기 주제는 하루의 반성과 자아성찰(?)이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일기 흐름의 마지막은 항상 이런 식이다. ‘…~ 그니까 정신차리고 살자! 아자아자!’. 생각해보면 무슨 정신을 차리고 뭘 열심히 하자는 건지 정확히 적혀있지는 않지만, 정확한 건 나를 스스로 다독이고 다시 일어나서 해보자..뭐 이런 느낌의 일기들이었다. 사실 일기를 쓰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우울하고 예민해지는 내 성격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보다 일기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하루의 이야기를 쓰고나면 내 기분을 3인칭 시점으로 관찰할 수 있었고 그 효과는 꽤나 좋았다. 가라앉았던 기분이 올라가고 평소를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대나무숲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내 일기는 지금의 에세이가 되었고 그렇게 난 또 대나무숲에 내 이야기를 적을 생각이다. 과거와 지금의 달라진 점이 있다면 혼자 몰래 읽던 일기를 누구든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돌아보지말고 떠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