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대 수석이 나의 제자가 되었다

한국에 복귀하고 싶지만, 아직은 머무는 닥터 이방인

by 박주영


완벽한 선택은 없어도, 최선의 선택만큼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비행기를 탈 때마다 찾아온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중국의 연구실 문을 여는 순간, 공기의 온도가 달라진다.
그곳엔 미묘한 피로와 작은 회의감이 뒤섞여 있다.


한국 모교를 떠난 결정이 완벽한 선택은 아니었더라도,
그때의 내가 내릴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길 바란다.
연세의료원 비전임교수로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중국 국립대 의대 전임교수로 독립적인 PI (Principal Investigator) 로서 명예를 쌓을 것인가.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독립과 명예’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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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부조리 속에서 실력으로 살아남기


하지만 실력으로만 살아남기엔,
이곳의 생태계는 너무나 낯설고 불투명했다.
중국 학계의 현실을 알면 알수록,
모교의 깨끗한 학문적 공기가 그리워졌다.


교수로 임용된 지 2년째, 나는 여전히 ‘외국인 교수’다.
중국 대학의 시스템은 여전히 내겐 이방인의 언어처럼 느껴진다.

이곳은 인구가 많아 실력자도 많지만, 동시에 잉여도 많다.
‘차이나 테크의 역습’이라 불리는 발전의 이면에는
상위 1%의 재능과 99%의 불합리가 공존하고 있다.


논문 실적보다 인맥과 뒷거래가 더 강한 세계.
비싼 식사자리와 싸구려 잠자리가 채용을 좌우하는 세계.
대리로 출석 체크만 맡기며 출근 없이 월급을 챙기는 교수도 있다.
나는 그 장면들을 볼 때마다 내 안의 열정이 식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내 세계에서는 성실이 곧 생존이었기에,
그 느슨함이 더욱 잔혹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의 힘은
이곳에서도 여전히 통한다는 것.


편법으로 일시적인 이익을 누리던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 무너졌다.
출근 없이 월급을 챙기던 이는
음주운전 사고로 법정에 서고,
교수직에서 영구 면직당했다.


논문 뒷거래와 연구비 횡령으로 부를 쌓던 자들도
결국 국가 연구부처의 철퇴를 피하지 못했다.
지원비는 전액 회수되었고,
그들의 이름은 더 이상 학계에서 불리지 않았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지만,
부조리의 균형추는 결국 제 자리를 찾아간다.


그래서 나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왔다.
소신을 지키는 일,
편법의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키우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
나만의 실력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퍼스널 브랜딩(personal branding)을 세워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30대의 내가 증명해 낸 생존의 방식이다.
상처를 비료 삼아 단단해진 신념.
그것이 내가 이방인의 땅에서도 연구를 이어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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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 수석에게서 온 메일

연구실 불이 꺼진 밤, 모니터 불빛만이 희미하게 내 얼굴을 비췄다.

그때였다.
이메일 알림음이 짧게 울렸다.


From: 약학대학 OO학생
제목: 교수님께 지도교수 신청 문의드립니다.


나는 습관처럼 클릭했다.
짧은 몇 줄의 문장이었지만, 그 문장에는 이상할 만큼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교수님, 우리 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신청 마감일이 다가오는데
뒤늦게 교수님의 연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교수님 밑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약대 수석인 그녀는 이미 영국 약대 대학원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연구실이었다.
그런데, 정작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오퍼를 받고도 며칠째 잠이 안 와요.
그곳 연구는 훌륭하지만, 제 마음이 이상하게 가볍지 않아요.
그런데 교수님 연구를 보고 처음으로 확신이 들었어요.
‘이거다’, 싶었어요.
제가 오래 꿈꿔온 연구가 바로 이거였어요.”


그녀의 눈은 반짝였다.
망설임이 없었다. 그 눈빛은 이미 결정을 내린 사람의 눈이었다.

나는 잠시 말을 고르고, 조용히 대답했다.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어떤 길을 가든, 네가 행복하면 좋겠어.”


그날 오후, 도서관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햇살이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이 학생이 나를 선택한다면…
나도 이곳에서 다시 버틸 이유가 생기겠구나.’

그날 밤, 메신저 알림이 울렸다.


“교수님, 영국행을 포기했습니다.
교수님 밑에서 배우고 싶어요.
내일 대학원 시스템에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등록하겠습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안 어딘가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불씨가 깜박이며 살아났다.


실력 있는 사람은 결국 언젠가, 누군가가 알아봐 주는 법.

유수의 교수들 사이에서,

그 수석 학생이 나를 선택했다는 사실 하나가
이방인으로 흔들리던 나를 단단히 붙잡았다.


나는 여전히 낯선 땅의 교수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 순간 처음으로 확신했다.


그날 이후,
연구실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는 건, 언제나 공간의 온도를 바꾸는 일이다.


밤늦게 실험을 마치고 나오는 길,
나는 불이 꺼진 연구실을 돌아봤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천천히 되뇌었다.


“이제, 나만의 니치(niche)에 자리 잡고 있구나.”


*니치(niche): 생태적 지위. 특정 환경에서 생물종이 지니는 역할이나 위치를 의미.



나만의 니치(niche)를 찾아서


떠난다는 건 늘 결핍에서 비롯되지만,
머무른다는 건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지만,
이방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다.
과학 연구도, 논문도, 학생 지도도 -
결국 모두 '글쓰기'처럼 삶을 구성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니치(niche)란,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로 스스로를 확장해 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Find your niche.jpg

✨ 에필로그

한국에 잠시 돌아갔을 때,
박사 동기 언니가 독일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토끼 선생님” 이야기를 꺼냈다.


“토끼 선생님은 잘 지내시죠?”
“아니요. 맨날 한국 들어오고 싶대요.”
“그럼 들어올 준비 중인가요?”
“아니요. 곧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로 이직한대요.
내가 볼 땐 한국 안 올 것 같아요.”


웃음이 났다.
고국은 그립지만, 돌아갈 무대는 이미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
그건 어쩌면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